베체트병 환자 심장이식 국내 첫 성공…희귀 난치병 질환에 서광

입력 2019-05-21 16:33
세브란스병원 윤영남·이승현 교수


[ 이지현 기자 ] 국내 의료진이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베체트병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베체트병은 다양한 장기와 입속, 혈관 등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이 병에 걸린 환자가 심장이식수술을 받고 퇴원한 것은 국내 처음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윤영남(사진)·이승현 심장혈관외과 교수팀에 지난해 말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이승영 씨(50)가 강석민·심지영·오재원 심장내과 교수팀에 재활·약물치료를 받고 이달 초 퇴원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4개월간 회복을 거쳐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이씨는 지난해 1월 극심한 호흡곤란 증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 베체트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입안이 자주 헐고 아팠지만 바쁜 일상 등의 이유로 주의 깊게 보지 않다가 병을 키웠다. 정밀검사 결과 이씨는 베체트병 때문에 생긴 염증이 대동맥과 대동맥판막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대동맥 판막이 제 기능을 못해 호흡곤란 증상이 심했다. 폐에 물이 차고 붓는 폐부종, 대동맥 속 막이 벌어지는 대동맥박리증도 함께 발견됐다. 이씨는 곧바로 염증 때문에 손상된 부분을 인공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와 함께 지난해 인공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을 세 번 받았고 면역억제제도 계속 먹었다. 하지만 심장혈관에 염증이 생긴 부위가 너무 넓어져 증상이 잘 낫지 않았다. 의료진은 이씨에게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해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

이식을 결정했지만 기증할 뇌사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증자를 기다리는 동안 이씨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염증 수술을 한 부분에서 피가 많이 났고 심장이 멈추기까지 했다. 약해진 심장기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심장과 폐 기능을 대신하는 체외막산소화장치(ECMO)에 의존해야 했고 신장기능까지 망가져 혈액투석 치료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기증할 뇌사자가 나타났지만 수술은 쉽지 않았다. 이미 받은 수술 때문에 장기가 유착된 데다 조금만 자극을 줘도 피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수술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수술에 들어갔다. 이식수술을 한 뒤 회복단계에도 맞춤형 심장재활치료를 했다. 염증을 막고 면역거부 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약물치료도 했다. 다른 신체 부위에 베체트병이 생기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류마티스내과 안과와 협력진료를 했다.

윤 교수는 “베체트병 염증이 심장 주변 주요 혈관으로 침범했을 때 생존율이 매우 낮다는 것은 학계 정설”이라며 “국내 처음으로 베체트병 환자에게 심장이식 수술을 해 일상 복귀를 도운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통증을 동반하는 구강점막 궤양이 자주 생기거나 베체트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심장초음파 등 정기적으로 심혈관계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