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에 PGA챔피언십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세계랭킹 1위 탈환 '겹경사'
[ 조희찬 기자 ] 2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스테이트파크 블랙코스(파70·7459야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를 맞이한 ‘슈퍼맨’ 브룩스 켑카(미국)가 성큼성큼 전장으로 향했다. 앞뒤로 흔들리는 두 팔의 근육이 터질 듯 불거졌다. 2위 그룹과는 7타 차. 역대 골프 역사를 통틀어 마지막 날 7타가 뒤집힌 드라마는 없었다. 우승 확률 100%. ‘메이저 사냥꾼’ 켑카는 완벽한 승리를 원했다. 티잉 에어리어에 들어선 그의 눈에서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의 광채가 번뜩였다.
해피 엔딩이 보장된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켑카는 수많은 장애물과 싸워야 했다. 지켜야 할 여자친구가 있었고 물리쳐야 할 악당이 존재했다. 켑카는 경기에 몰두한 나머지 경기장에 들어서는 그에게 키스로 응원을 보내려던 모델 출신 여자친구 제나 심스를 보지 못했다. 마음이 상한 심스는 혼자 돌아서야 했다.
유러피언 챌린지(2부) 투어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켑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흔들렸다. 3라운드까지 17개의 버디를 기록한 그는 이날 전반 버디를 1개 잡는 데 그쳤다. 보기도 1개 내줬다. 10번홀(파4)에서야 다시 버디를 잡았다. 하지만 11번홀(파4)부터 티샷이 급격히 흔들렸다. 4홀 연속 보기. 순식간에 리드가 좁혀졌다. 따라오던 더스틴 존슨(미국)이 그를 1타 차로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갤러리 쪽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존슨의 이니셜인 ‘디제이(DJ)’를 외쳐대기 시작한 것이다. 갤러리들은 사상 처음으로 7타 차가 뒤집히는 ‘역사적 드라마’를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모두가 존슨의 편으로 돌아섰다. 켑카는 “(갤러리들의 존슨을 향한 일방적 응원이) 사실은 도움이 됐다”며 “가장 적절한 순간에 (상대를 향한) 그들의 응원이 나왔고, ‘적지에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개 메이저 2연패한 ‘최초의 사나이’
‘전의로 가득 찬’ 켑카를 막을 자는 없었다. 켑카는 까다로운 마지막 4개 홀에서 17번홀(파3) 보기를 제외하곤 모두 파로 막았다. 따라오던 존슨은 마지막 3개 홀에서 보기 2개를 범해 갤러리들이 고대하던 극적인 반전을 연출하지 못했다.
켑카는 이날 버디 2개와 보기 6개로 4타를 잃었다. 하지만 최종합계 8언더파 272타를 기록해 통산 20승의 존슨을 2타 차(6언더파)로 제압했다. 이 대회 2연패, 개인 통산 메이저 4승째다. 우승 상금 198만달러(약 23억6000만원)를 챙긴 그는 심스를 끌어안고 진한 키스를 나눴다.
켑카는 이로써 아홉 차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차지하며 ‘메이저 킬러’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US오픈과 PGA챔피언십을 모두 2연패한 이는 그가 최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2006년, 2007년 이 대회를 2연패한 적이 있지만 US오픈 2연승까지 달성하진 못했다. 또 켑카는 이 대회에서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완성했다. 1983년 할 서튼 이후 36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켑카는 “정말 놀랍다. 나도 이렇게 빨리 (많은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뤄낼 줄은 몰랐다”고 했다.
US오픈 3연패 또 다른 신화 도전
켑카는 경기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순위를 두 계단 끌어올리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그가 세계랭킹 1위가 된 것은 올해 1월 이후 5개월 만이다. 그는 2018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더CJ컵@나인브릿지에서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는 또 이번주 보여준 ‘외계인급’ 장타를 무기로 3주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골프링크스에서 열리는 US오픈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이 대회까지 제패한다면 전무후무한 3연패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 350야드를 보낸 그는 나흘 내내 평균 313야드의 드라이브 비거리를 기록하며 긴 전장을 가진 코스에서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다.
강성훈이 아시아 국적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단독 7위(이븐파)에 올랐다. 강성훈의 종전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2016년 기록한 US오픈 공동 18위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