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존재 이유는 예측가능성
검찰, 조속히 무혐의 결론 내려야
≪이 기사는 05월20일(10:1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사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아닙니까?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고발에 조(兆)단위 인수합병(M&A) 거래가 영향을 받다니요.”
M&A 전문 A변호사는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KT의 복수노조 중 한 곳인 KT새노조가 지난 3월 황창규 KT회장과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등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 한앤컴퍼니의 롯데카드 인수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다. 사실 M&A 업계는 두달전 노조의 고발 내용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앞뒤가 맞지 않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도 없는 주장이어서다.
노조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KT와 자회사인 나스미디어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보유하던 엔서치마케팅이란 회사를 2016년 600억원에 인수했는데, 원래 이 회사의 가치는 176억원이라는 것. 그러니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인수한 황 회장은 배임, 부당한 차익을 남긴 한 대표는 편법증여에 따른 증여세 탈루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다.
176억원이라는 숫자는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엉뚱하게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이다. 상증법은 시가가 없는 비상장주식을 사고 팔 때 그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보통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6대 4로 가중평균 해 구한다. 문제는 상증법은 개인간, 혹은 특수관계인간 거래에 적용하는 세법이라는 점이다. KT와 한앤컴퍼니는 개인이 아닌 법인이다. 상증법상 특수관계인은 친족관계나 경제적 연관관계, 경영지배관계가 있는 자를 말한다.
A변호사는 “KT와 한앤컴퍼니는 상증법상의 가치평가 방식을 따를 이유가 전혀 없다”며 “당사자들이 평가한 가격을 가지고 협상해서 합의하면 그 뿐”이라고 했다.
노조가 말하는 공정가치에 근거가 없다보니 한 대표에게 씌워진 증여세 탈루 의혹은 아예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는 게 A변호사의 설명이다. 노조는 한 대표가 176억짜리 회사를 600억에 팔아 남긴 차익 424억원을 '편법 증여'로 규정하고, 그만큼의 증여세를 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황 회장을 흔들기 위한 ‘아니면 말고’식 노조 고발의 불똥이 다른 M&A 거래로 튀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은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을 지키기 위해 롯데카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초 한앤컴퍼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양측은 10월까지 거래를 완료해야 하는 롯데그룹의 사정때문에 주식매매계약(SPA)을 서둘러왔다. 하지만 검찰이 KT노조 고발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도 KT새노조의 주장이 비상식적이란 걸 모를 리 없지만, 금융당국이 검찰 수사를 이유로 대주주변경 승인 심사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검찰이 조속히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해야 롯데카드 M&A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문제는 검찰이 노조 주장을 바로 일축하는 모양새에 부담감을 느껴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만에 하나 이 일로 한앤컴퍼니와 롯데그룹간 거래가 무산된다면 M&A 업계에 남게 될 시사점은 뭘까? 아무리 정상적인 거래여도 운이 나쁘면 부메랑이 돼 악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법치가 중요한 이유는 예측가능성이다. 법을 믿고 체결한 사적 계약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무너진다. 검찰이 하루라도 빨리 사건을 종결시켜야 하는 이유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