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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발전위원장 맡았던 이홍훈 前 대법관
[ 신연수 기자 ]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는 법조계의 뉴스메이커였다. 사발위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필요성을 제기하며 지난해 2월 법원 내외부 인사 11명으로 구성한 직속 자문기구다. 사발위는 해산 전까지 9개월 동안 법원행정처 폐지, 고등법원 부장(차관급) 신규 보임 중단, 판결서 공개 확대 등 14건의 개혁안을 김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개혁안은 법원조직법 등의 개정이 미뤄지면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홍훈 전 대법관(73·사법연수원 4기·사진)은 1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법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 전 위원장은 “법원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고 김 대법원장이 직접 부탁해 어렵게 개혁안을 마련했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난감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원장직을 수락하기 수개월 전 담도암 수술을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다.
이 전 위원장은 개혁 방안 가운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심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한 뒤 법관 이외의 외부 인사가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법관으로만 이뤄진 조직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 위원장은 “사법행정이 재판에 관여하는 경로를 차단해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사회 혼란을 잡을 수 있다”며 “법원행정처를 없애려면 법원조직법 등을 바꿔야 하는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법원 안팎에서 거세게 불었는데도 국회가 몇 달째 외면하고 있다”며 “사개특위가 얼른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위원장은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법관을 지낸 그는 진보성향 법조인으로 평가받으며 재직 시절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전수안, 김지형, 김영란, 박시환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소수의견을 자주 냈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며 전원합의체 토론이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양한 국민의 법 감정을 적절히 판결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도 다양한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의 정치색과 관련, “판사는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이 아니라 중도에 서야 한다”며 “본인의 삶과 철학에 따라 생길 수 있는 편견이나 예단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2012년부터 법무법인 화우에 몸담고 있다. 박상훈 화우 대표변호사가 이 전 위원장의 배석판사였다. 지금은 고문이지만 화우공익재단 초대 이사장(2014~2017년)으로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이 전 위원장은 법조인의 사명으로 공익활동을 꼽는다. 그는 “재단 설립 초기 기금 마련이 쉽지 않고 변호사들의 관심도 적었다”며 “젊은 법조인들이 경쟁에 매몰돼 공공성을 갖춘 전문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조인의 공익활동이 활발해진다면 퇴직한 고위 전관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위원장은 서울 동자동에서 노숙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곤 한다.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와 동성혼 합법화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로 진행한 공익세미나 논집(우주일화·宇宙一花)을 출간해 법조계의 관심을 모았다. 책 제목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한 송이 꽃처럼 하나의 공동체로 어울려 살아가자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