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우의 부루마블] 정부 결제한도 폐지와 리니지 요금개편의 이상한 우연

입력 2019-05-17 08:35
수정 2019-05-17 09:34
정부,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 추진
엔씨소프트, 리니지 정액제 깜짝 개편

게임 사행성 부추기는 부정적 행위 비판
"과금 지나치게 유도…산업발전 도움 안돼"



엔씨소프트가 지난 2일 PC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이용권(정액제)을 폐지했다.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한 후 21년 만이다. 같은 날 정부가 50만원으로 제한된 온라인게임 결제한도를 폐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는 일주일 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으로 사실이 됐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엔씨가 정부의 결제한도 폐지를 미리 알고 선수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엔씨는 지난달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요금제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표면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는 게임업계의 오래된 숙원 사업이었다. 자율 규제라는 취지와 달리 정부가 게임에 등급을 내주지 않는 방법으로 제재하면서 사라져야할 대표적인 규제로 언급된 것이다.

반면 리니지의 정액제는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수익모델로 상징성이 높았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수익성 높은 부분유료화로 갈아타는 상황에서 리니지의 정액제는 게임업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인식됐을 정도다. 리니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말이다.

엔씨는 지난해 11월까지 정액제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약 반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모든 이용자들이 이용권 없이 무료로 리니지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 반응은 좋지 않다.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이 과정에서 결제한도 폐지를 유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한국게임학회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엔씨의 요금제 개편이 온라인게임의 결제한도 폐지와 맞물려 이용자들의 과금을 지나치게 유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의 사행성이 짙어지면서 장기적으로 게임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결제한도 폐지와 리니지 요금제 개편은 별개라는 반박이다. 부분유료화가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리니지의 정액제 폐지는 매출 감소를 막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부분유료화로 매출이 늘어난 많은 게임들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게임산업은 현재 위기에 직면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는 게 옳다는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게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의 결제한도 폐지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요금제 개편의 이상한 우연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45%의 국민(여론조사)이 '게임 중독을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분류·관리하는 데 찬성'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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