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양도로 편법 증여
"득보다 실 많을 수도"
증여세를 아끼기 위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가족끼리 부동산을 매매하는 형태의 ‘편법증여’가 늘고 있다. 시세를 기준으로 양도세(매도자)와 증여세(매수자)를 내더라도 단순증여할 때보다 전체세금을 아낄 수 있어서다. 양도세 중과, 보유세 인상 등 세금부담이 커진 다주택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권에서 이 같은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세금 전문가들은 가산세에 따라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는데다 과세당국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들어 주의를 당부했다.
◆싸게 팔아 5000만원 ‘세테크’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의 대표적 재건축 예정 아파트인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5㎡는 지난달 말 9억8755억원(11층)에 매매 신고됐다. 이 평형은 1월까지만 해도 17억~17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물건이다. 9·13대책의 영향이 이어지면서 지난 3월 16억원대 중반으로 조정받기도 했지만 지난달부터 가격을 회복했다. 현재 호가는 17억원대다.
인근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해당 물건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주소가 같다. 잠실주공 5단지에 정통한 한 부동산 관계자는 “별도로 중개업소를 끼지 않고 직거래됐다”며 “정상거래가 아닌 친족간 증여거래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도 이상거래로 판단해 송파구청에 조사를 통보할 예정이다.
세무전문가들은 증여세를 아끼기 위한 거래로 분석한다. 해당 단지를 단순증여 했을 때 증여를 받은 사람은 4억9664만원(시세 17억3000만원 기준)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저가로 양도한다면 처음 취득한 가격에 따라 세금이 더 줄어들 수 있다.
저가양도를 하더라도 시세와 3억원 이상 차이가 나면 ‘부당행위계산부인’을 명목으로 증여세를 추징받는다. 그럼에도 저가양도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세 효과가 있어서다. 세무당국은 시가와 가격의 차이 전부가 아닌 시가의 30% 또는 3억원 중 더 적은 금액을 뺀 금액(과세표준)에 증여세를 매긴다. 주공5단지의 경우 매도자가 아버지, 매수자가 성년자녀라면 약 6643만원의 증여세가 자녀에게 추징된다.
양도자는 시세에 맞춰 양도세를 추가로 낸다. 처음 취득한 가격이 높으면 세금이 줄어들 확률이 높다. 이 단지를 10억원대에 많이 거래됐던 2006년이나 2010년 취득했다고 가정하면 판 사람(아버지)에겐 약 3억7000만원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가족이 낼 세금(증여세+양도세·4억3643만원)이 증여세를 내는 경우보다 5000만원가량 적다. 한 대형은행 세무전문가는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금부담이 대폭 강화되면서 일주일에 다섯 건 이상 증여상담이 들어오고 있다“며 “자산가들은 보통 가족전체를 한 지갑으로 보고 절세방법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 같은 이상 저가양도는 강남권에만 압구정동 신현대11차, 잠원동 아크로리버뷰 신반포, 압구정 한양1차 등 네 건에 달한다.
◆세금 좀 아껴보려다….
증여세를 아끼기 위해 저가양도를 활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편법증여가 의심되는 부동산 거래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있어서다. 편법증여를 했다가 과세당국의 타깃이 돼 보유한 법인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저가양도는 위법행위인 데다 가산세에 따라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며 “자의적으로 판단하지말고 반드시 전문가확인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현 미래에셋생명 선임컨설턴트는 “과세당국의 의지 등을 감안했을 때 사전증여 등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절세방법을 찾는게 세금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저가양도가 부동산 매매시세를 교란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고된 문제거래를 최대한 빨리 시스템에서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