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일촉즉발' 전운
이라크 침공때 동원軍 규모
항모·B-52폭격기 전진배치
[ 선한결 기자 ] 미국이 세계 원유의 주요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유조선 네 척을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 공격한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나섰다. 미국은 최대 12만 명 규모의 병력을 중동에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핵협정 탈퇴 이후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1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백악관은 중동에 미군 병력 최대 12만 명을 보내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거나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는 정황이 포착될 경우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이 지난 9일 고위급 회의에서 이 같은 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2만 병력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동원된 미군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은 앞서 항모전단과 B-52 전략폭격기,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 상륙함 등을 중동에 배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란이 8일 성명을 통해 “이란은 핵협정에서 약속한 의무 중 일부를 이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과 이란은 연일 강경 발언을 주고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이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2일엔 아미릴리 하지자데 이란혁명수비대(IRGC) 사령관이 이란 ISNA 통신에 “미국 항공모함이 과거엔 심각한 위협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우리의 표적일 뿐”이라며 “미국이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들의 머리를 칠 것”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12일 호르무즈 해협 부근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영해 푸자이라 해안 특별경제구역에선 가해자 미상의 사보타주가 발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두 척, 노르웨이 유조선 한 척, UAE의 대형 선박 한 척 등이 공격을 받았다. 사우디 유조선 중 한 척은 사우디 라스 타누라항에서 원유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배였다.
미국은 이번 공격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조사 중이다. AP통신은 13일 미국 관료를 인용해 “미군은 이란이나 이란의 지원을 받는 대리군이 피해 선박에 구멍을 내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유조선 공격 상황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라”며 “일대 안보를 해치는 사악한 음모에 강력한 우려를 표한다”고 반박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하루 물동량의 20%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지난달 말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 제재를 강화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일대 충돌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은 상당한 위험”이라며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발 스타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은 “중동 일대에서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헤즈볼라나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 테러조직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국제 원유 가격은 세계 각지에서 연이어 터져나오는 분쟁 소식에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13일 선물시장에서 원유는 유조선 사보타주 소식이 전해진 장 초반 크게 올랐다가 미·중 무역전쟁 우려에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14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소유의 석유 펌프 두 곳이 예멘 반군이 조종하는 드론에 의해 공격받은 소식이 전해져 유가가 상승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