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버스기사 임금 보전…택시·트럭 등에 나쁜 선례 남겨

입력 2019-05-14 17:44
주 52시간發 버스파업


[ 추가영/백승현/이인혁/이주현 기자 ]
대구 인천 광주 등 일부 지역의 시내버스 노사가 임금 인상률 등에서 합의점을 찾아 파업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요금 인상 여부, 중앙정부의 국비 지원 등의 결정은 뒤로 미뤄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특례제외업종인 노선버스뿐 아니라 특례업종을 유지하고 있는 택시, 트럭 운송 등도 향후 제외되면 이번 버스 파업 위기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조 협상력 높여준 정치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는 일부 대책을 내놨지만 지자체가 면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버스운송사업자에 대한 국비 지원은 재정 원칙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업 계획을 주도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버스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중앙정부 재원 지원 방안이 빠진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준공영제 확대 카드’를 꺼낸 것은 노조에 중앙정부 재원 지원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3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이어 14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정부가 버스 준공영제를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보려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버스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버스에서 나온 모든 수입을 일괄적으로 모은 다음 각 버스회사에 분배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시는 시내버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에만 540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인천시는 이날 버스기사 임금을 올해 8.1%, 2020년 7.7%, 2021년 4.27% 올리는 등 3년에 걸쳐 현재 수준보다 20% 이상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인천시 버스 준공영제 예산은 당초 계획보다 170억원 늘어나 127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버스 준공영제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라며 “버스회사들이 비용을 얼마나 써서 손해가 났는지 지자체가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버스기사 근무 방식을 1일 2교대로 바꾸고 임금 수준을 준공영제 평균 임금으로 끌어올리려면 약 1조3433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지역의 버스기사 평균 월급은 368만원으로, 그렇지 않은 지역의 버스기사 월급(341만원)에 비해 7.9% 많다.

방송·교육 등 파업 움직임 확대될 수도

이번 버스파업 위기는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근로시간 특례제외업종 도미노 파업의 ‘신호탄’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례업종이란 회사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 시 주 5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업종이다. 국회는 지난해 3월 주 52시간제 입법 당시 기존 특례업종 26개 중 21개 업종(노선버스, 방송, 소매업, 연구개발업 등)을 제외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300인 이상 특례제외업종 사업장은 지난달 기준 총 1051곳이다. 이 중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 곳이 897곳(85.3%)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노선버스 외에 방송·교육서비스업종 등의 주 52시간 초과 사업장 비율도 154곳(14.7%)이나 돼 노사 합의 등 사전 조치가 없으면 버스파업과 같은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인기 한국교통연구원 팀장은 “택시, 전세버스, 트럭 운송 등은 특례업종이지만 향후 제외업종에 포함되면 노선버스처럼 주 52시간제에 따른 손실 보전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지정으로 파행 중인 국회발 리스크도 있다. 지난 7일 종료된 4월 임시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교육서비스업종에는 비상이 걸렸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서비스업종은 대입 전형시기와 맞물려 초과근로가 많이 발생한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상당 부분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조속한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가영/백승현/이인혁/이주현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