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K로봇
(4·끝) 진화하는 산업용 로봇
[ 이해성 기자 ] 자동차용 머플러를 제작하는 경기 시화공단 A업체. 수작업으로 하던 부품 용접을 ‘협동로봇’에 맡겼다. 기존 5~7분가량 걸리던 공정시간이 90초로 3~4배 빨라졌다. 경남에 있는 정밀주조부품업체 B사는 불량품 검사에 협동로봇을 써 보니 15~30초 걸리던 검사시간이 5초 이하로 짧아졌다.
‘21세기 제조용 로봇’으로 불리는 협동로봇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협동로봇은 격리 장소에서 일하는 제조용 로봇과 달리 안전망(울타리 등) 없이 근거리에서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을 말한다.
ABI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협동로봇 시장은 2015년 9500만달러(약 1128억원)에서 내년 10억달러(약 1조1875억원)로 5년 새 10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과 결합해 발전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2016년 7월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협동로봇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까다로운 안전필증 발급요건 등이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제조용 로봇이 진화했다
제조용 로봇은 이송·적재용, 조립 및 분해용, 용접용 순으로 많다. 다른 로봇과 마찬가지로 정밀제어용 서보모터가 필수적이다. 일본 3대 제조용 로봇기업(화낙·야스카와·가와사키) 중 하나인 야스카와가 1960년대 세계 최초로 서보모터를 개발했다. 일본은 100년 이상 노하우를 토대로 제조용 로봇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공장에서 쓰이는 로봇 대부분도 일본 업체 나치후지코시가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용 로봇은 구조상 직교좌표, 스카라(수평다관절), 수직다관절, 고속병렬형(이송용) 네 가지로 나뉜다. 3차원(3D) 프린터도 직교좌표로봇의 일종이다. 로봇 정밀도는 말단 부위 움직임에서 결정되는데 직교좌표와 스카라는 말단 부위 제어가 비교적 쉽다.
수직다관절은 사인·코사인 등 삼각함수, 이 함수의 역함수 등 복잡한 행렬(매트릭스) 문제를 극도로 짧은 시간에 풀어야 하는 고난도 연산 과정이 필요하다. 일본 독일 미국 등은 1970년대 이후부터 컴퓨팅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수직다관절 로봇을 제조해왔다. 수직다관절 로봇이 작고 스마트하게 진화한 것이 협동로봇이다.
6개 이상 관절, 작고 똑똑한 로봇
협동로봇은 6축(관절) 이상을 기본으로 한다. 인간과 부딪히거나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동작을 멈춘다. 휴머노이드와 마찬가지로 ‘FT센서(힘센서)’가 관건이다. 공장 근로자 사이에 나란히 배치되는 ‘로봇 동료’라고 할 수 있다.
협동로봇 시장은 덴마크 업체 유니버설로봇이 개척했다. 이 회사의 제품은 폭스바겐, BMW 등 세계 자동차공장 곳곳에 배치돼 있다. 제조용 로봇과 동일하게 작업하면서도 무게가 가볍고 크기는 작다. 3상 전원(산업용)이 아니라 가정용 전원으로 쓸 수 있다.
5㎏ 물건을 들어 처리할 때 국내 대기업 A사의 제조용 로봇은 중량이 120㎏에 달하지만 유니버설로봇의 협동로봇은 18㎏에 불과하다. 다만 안전기능을 넣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느려진다.
스위스 ABB, 독일 KUKA 등 전통 로봇 강자들도 차츰 협동로봇 양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선 한화정밀기계 두산로보틱스 등 대기업과 뉴로메카 오토파워 등이 협동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협동로봇의 작업 과정을 분석·저장·공유하는 디지털 오픈 플랫폼을 개발하자는 주장도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구동(조립 용접 등), 인지(센싱) 등 모든 작업 과정을 시각화하거나 데이터로 만들고, 이 데이터를 다시 협동로봇 본체로 무선전송해 학습(딥러닝)시키는 것이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이 피드백 과정이 반복되면서 협동로봇 성능의 자체 진화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디지털 트윈’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제안한 박태준 한양대 ERICA캠퍼스 산학협력단장은 “노동집약적 영세기업이 대부분인 안산공단(시화·반월·남동공단)은 낮은 생산성이 고질적 문제”라며 “협동로봇 활용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산=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