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과즙 음료 쏟아진다
[ 안효주 기자 ]
“날 물로 보지마.”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2% 부족할 때’는 1999년 나왔다. 전성기는 2000년대 초. 전지현, 정우성 씨 등 스타를 내세운 TV 광고(사진)를 타고 카피는 유행어가 됐다. ‘향이 나는 물’이란 새로운 콘셉트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시장이 열리자 남양유업의 ‘니어워터’, 해태음료의 ‘엔투오’ 등 물인 듯 아닌 듯한 ‘미과즙 음료’가 줄줄이 나왔다.
이런 미과즙 음료가 다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과즙 음료는 과즙 함량이 2~3% 미만으로 물과 비슷한 음료다. ‘니어 워터(near water)’ ‘플레이버 워터(flavored water)’라고도 부른다. 생수처럼 투명한 색깔이지만 과일향, 꽃향 등을 더해 달짝지근하다.
배·자몽 향에 자일리톨까지
롯데칠성음료의 ‘2% 부족할 때’는 부활하고 있는 미과즙 음료시장의 대표주자다. 2000년 매출 1690억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내리막 길을 걸었다. 옥수수수염차, 비타민 음료 등 기능성 음료에 밀려 매출이 줄었다. 2016년에는 전성기의 10%인 160억원에 그쳤다. 이듬해 다시 늘기 시작했다. 2017년 300억원, 작년에는 350억원으로 뛰었다. 맛을 다양화한 효과였다. 2016년 말 ‘2% 부족할 때 아쿠아’를 새로 내놨다. 복숭아향만 넣은 기존 제품과 달리 사과 양배추 등 15가지 종류의 과일과 야채 즙을 넣었다.
후발주자들이 다시 뒤를 이었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6월 ‘플레이버 워터’ 자몽맛·라임맛을 내놓으며 미과즙 음료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200만 병이 팔렸다. 해태htb는 ‘썬키스트 레몬워터’, 한국코카콜라는 코코넛워터 ‘지코’를 내세워 경쟁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편의점도 가만 있지 않았다. CU는 미과즙 음료를 21가지나 팔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자일리톨맛이 나는 물을 자체상표(PB) 제품으로 내놨다. GS25는 비타민C를 넣거나 배향을 추가하는 등 이색 상품을 출시했다. 올해 들어 GS25의 미과즙 음료 상품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 증가했다.
여름 다가오며 수요 증가
미과즙 음료는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1990년대 중반 ‘플레이버 워터’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끈 게 원조다. 이때 나온 제품들은 주로 감귤 계열의 과일향을 더해 여성이 즐겨 찾았다.
미과즙 음료가 20년 만에 부활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 크다. 2015년 일본 식품업체 산토리가 ‘요구리나’를 출시했다. 요구리나는 출시 1년 만에 1000만 상자(2만4000병)가 팔렸다.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듬해엔 레몬홍차맛 물과 밀크티맛 물도 등장했다. 홍차 잎을 우려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증기를 모아 급속 냉각하고, 고농도 액체로 추출해 물과 섞어 만들었다. 일본에서 다양한 물맛을 본 국내 여행객들이 국내에서 다양한 물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2017년 영국에서는 물인지 커피인지 구분하기 힘든 투명한 커피인 ‘클리어 커피’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향이 첨가된 물 시장이 꾸준히 커져 내년 4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관련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미과즙 음료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미과즙 음료는 탄산을 피하고 당분 섭취를 줄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체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날씨가 더워지면서 관련 신제품이 계속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