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찍어누르기'에 지친 관료
vs 복지부동에 뿔난 黨·靑
당·청, 정부 관료에 불만 팽배
공무원 사회도 '부글부글'
[ 임도원/이태훈 기자 ]
문재인 정부가 3년차에 들어서면서 당·청과 정부 간 갈등이 표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공직사회가 예전같지 않다. 쇄신이 필요하다”며 ‘군기잡기’에 나설 태세다. 차관급 등 고위직에 대한 인사카드를 활용해 경고를 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집권 중반기인데도 공무원 특유의 복지부동이 심해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반면 공직사회는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에서 찍어 내리듯 하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정책 집행에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공무원을 만나면 “국회 파행이 장기화돼 살맛 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 사이에서 ‘이참에 여당에서 내려오는 정책을 최대한 뭉개보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당·청 “공무원 복지부동 심각”
정부 부처에 대한 당·청의 불만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서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이인영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회의 시작 전 방송사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관료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다가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 원내대표가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다”고 하자 김 실장은 “정부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 간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 당·청의 정부 관료에 대한 불만은 버스 파업 문제였다. 이 원내대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라고 했고, 김 실장은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고 말을 보탰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버스 파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청의 관료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실장이 지난해 12월 주재한 각 부처 장관 정책보좌관 비공개회의에서도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터져나왔다.
올 들어 주요 정책을 놓고 당정 간 갈등을 빚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가업상속제도 개편안이 대표적이다. 기재부는 당시 독자적으로 “가업 상속 후 기업의 지분을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즉각 “당이 여러 대안을 준비 중인데 기재부가 사전 조율 없이 발표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부 부처가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건 사례도 있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지난 3일 노·사·정 빈곤대책 합의문을 발표하려 했지만, 국가재정 부담을 우려한 기재부 반대로 권고안을 내놓는 데 그쳤다. 당·청이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에 기재부가 반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이 당에서 제기됐다.
관료 “직권남용보다 직무유기가 낫다”
정부 관료들의 이반 움직임은 ‘정책 피로감’이 1차 요인으로 꼽힌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내기 위해 ‘OEM 방식’으로 내려오는 각종 정책 지시에 업무 의욕이 꺾일 대로 꺾였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놓고도 갈등이 빚어졌다. 정부 내에서는 “올해 470조원 ‘슈퍼 예산’ 편성에다 1조8000억원의 목적예비비도 남았는데 미세먼지 등을 핑계로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을 짠다”는 불만이 팽배해졌다. 이 때문에 당·청은 10조원 규모 추경 편성을 원했지만, 기재부가 거의 일방적으로 6조원대 편성안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3월 “정부가 10조원 규모 추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나중에 “정부와 협의 없이 한 발언”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공직사회를 겨냥한 전방위 적폐청산도 공무원들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 정부 부처 사무관은 “과거 정부에서 추진한 국책사업의 정무적 책임은 국장급 이상들만 졌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사무관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野 “공무원 탓은 책임전가…레임덕이냐”
야당은 당정 간 갈등의 책임은 여당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이 원내대표 등의 발언과 관련한 논평에서 “공무원 탓을 하는 것은 책임전가”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자신들이 내세운 정책 실패를 공무원들한테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공무원을 부하 직원처럼 여기는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직자들이 2기가 아니라 4기 같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주도력을 강화해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헤쳐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집권 3년 차를 맞아 당의 주도성을 지금보다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임도원/이태훈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