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그는 이날도 1000여 명의 정·관·재계 인사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무엇보다 기쁜 건 국교 정상화 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어 중·일 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양국 우호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청융화(程永華) 주일 중국대사가 9년2개월간의 도쿄 근무를 마치며 지난 7일 송별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단교 직전까지 갔던 위기를 특유의 친화력으로 해결한 외교 베테랑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주요국 대사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어려울 때마다 훌륭한 인품으로, 일본인도 놀라는 유창한 일본어로, 폭넓은 인맥으로 양국의 다리 역할을 했다”고 극찬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별도 오찬에 이어 송별회까지 직접 참석하며 최장수 중국대사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췄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일본은 이달 베이징 고위급 경제대화에 각료 여섯 명을 보내기로 했다. 중국도 이에 화답해 시진핑 주석이 집권 후 처음으로 다음달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다.
중국은 새 주일대사에 일본 근무 경험 15년 이상의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차관 겸 한반도특별사무 대표를 내정했다. 조선족 출신인 그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북한 핵문제에도 정통하다. 중국은 이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오래 키우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익 극대화를 꾀한다. 최근의 중·일 관계 개선은 일본 전문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장관은 주일대사 시절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로 고위층과 깊은 교감을 나눴다. 일본도 외무성의 한반도 담당자나 한국 주재 외교관은 거의 모두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대사는 어학 능력과 전문성, 인맥, 정세 분석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은 외교 경험 없는 정치인이나 교수들이 대사로 부임한 뒤 1년여 만에 돌아오곤 한다. 주일·주중 한국대사는 1~2년짜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코드 인사’ ‘보은 인사’ 소리를 듣는다. 주한 중·일대사들이 4~5년씩 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외교는 정치·경제·문화의 다양한 요인으로 복잡하게 엮여 있다.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끼리는 더욱 그렇다. 청융화 대사도 송별회에서 “이웃 주민은 선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웃 나라는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바람 잘 날 없는 한·중·일 3국의 외교 현장을 비교해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고도화되고 세련된 외교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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