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아쇠' 당기자 中 "결사항전"…무역전쟁 5개월 만에 재발

입력 2019-05-09 17:49
USTR 관보 "中 제품 관세율 10%→25% 인상"

로이터 "中, 합의 초안 대부분 뒤집어…법제화 거부"
중국 내부 "구조개혁보다 고율관세가 낫다" 강경론


[ 주용석/강동균 기자 ] 미국과 중국(G2)의 무역전쟁을 다시 촉발하는 총성이 울렸다. 미국이 방아쇠를 당겼고 중국은 보복할 것임을 밝혔다.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 큰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8일(현지시간) 온라인 관보에 “2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일부터 10%에서 25%로 인상한다”고 게재했다. 9~10일 워싱턴DC에서 예정된 미·중 무역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세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대해 중국 상무부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면 반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2월 1일 ‘휴전’ 이후 5개월여 만에 G2의 무역전쟁 재개가 불가피해졌다.


관세 인상 강행 예고한 미국

USTR이 이날 ‘10일 관세 인상’ 계획을 온라인 관보에 올린 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말로만 관세 인상을 경고한 것과 달리 미 정부가 ‘문서’를 통해 관세 인상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9~10일 미·중 무역협상에서 극적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중국 협상단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이틀간 라이트하이저 대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머리를 맞대고 최종 담판을 벌일 예정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그들(중국)이 합의를 원한다는 암시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합의 가능성을 점점 낮게 보고 있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로 10일 관세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60%”라고 내다봤다. 이틀 전 보고서에선 40%로 전망했다. 10일까지 무역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이보다 낮은 10%로 예상했다.


중국 비난하는 미국

미국은 중국의 약속 위반 수위가 임계치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 정부 당국자와 민간 소식통을 인용, “중국이 지난 3일 밤 늦게 무역합의 초안을 대폭 수정한 150쪽 분량의 문건을 미국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국 측 수정안은 미국의 핵심 요구를 뒤집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중국은 초안 7개 장(章)에서 지식재산권 탈취, 무역기밀 절도, 기술이전 강요, 경쟁제한 정책, 금융서비스 접근 제약, 환율 조작 등 미국의 핵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법률 개정 약속을 삭제했다. 미국 협상단을 이끈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므누신 재무장관은 수정안을 보고 깜짝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당초 합의를 뒤집은 것은 최소 12개 항목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미국이 중국 지방정부의 산업보조금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대립이 깊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밖으로의 데이터 반출을 제한하는 사이버보안법 등에 관한 미국의 시정 요구는 “중국이 ‘내정간섭과 다름없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대충 넘어가지 않을 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연설에서 “중국이 합의를 깼다”며 “그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미, 내정간섭 말라”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면 ‘반격’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국무원 자문에 응하는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국의 불만을 모두 수용해 관련 법을 수정하는 것은 중국의 중장기 발전을 통째로 위험에 빠뜨리는 ‘자살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25% 관세 인상을 감내하는 게 중국에 유리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의 법개정 및 시행 과정을 살펴보겠다고 나섰으며, 이는 사실상 내정간섭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이 관세를 올려도 중국 기업과 정부는 대처할 능력이 있다”며 “중국은 필요하다면 미국과 장기전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전문가 사이에선 미국 농산물 등에 대한 관세 인상, 미 국채 보유량 조정 등 구체적인 ‘보복 조치’가 거론되고 있다.

실제 ‘관세폭탄’이 터지면 세계 경제는 물론 미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관세 인상은 게임체인저”라며 “(미국이 예고한 대로) 관세가 오르면 지난해 2.9%였던 미국의 건실한 경제성장률이 1년 뒤(올해) 1.8%포인트 깎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