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로봇' 다빈치·마젤란 종횡무진 하는데…걸음마 하는 韓

입력 2019-05-09 17:42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

갈 길 먼 K로봇
(2) 글로벌 시장 존재감 없는 수술로봇


[ 이해성 기자 ] 한 대 가격이 30억원인 서비스 로봇이 있다.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IS)사의 복강경 수술로봇 다빈치다. 2000년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이 로봇은 그동안 세계적으로 5000대 넘게 팔렸다. 국내에선 이우정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2005년 처음 사용했다. 비급여 항목인 이 로봇 1회 수술비는 2017년 기준 최고 1400만원.

수술로봇은 다빈치처럼 수술의 모든 과정을 의사와 함께하는 로봇을 말한다. ‘최소 절개’라는 의료 트렌드에 따라 최근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의료·물류·농업·재활 등 ‘전문서비스 로봇’ 가운데서도 성장세가 가장 가파르다. 전 세계 수술로봇 1위 기업이 바로 IS다.

BCC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술로봇 시장은 2017년 5조8700억원에서 연평균 13.2% 커져 2021년 9조64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랜드뷰리서치는 2024년 24조원가량으로 팽창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수술로봇 싹이 움트고 있는 수준이다.


세계는 수술로봇 ‘전쟁’

수술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본지 5월 9일자 A1, 4, 5면 참조) 손끝의 기능과 정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고 보면 된다. 고성능 수술로봇은 1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 이하로 미세하게 움직인다. 숙련된 의사 정밀도(100㎛)보다 열 배 이상 뛰어나다.

관절 부위인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최적 설계는 기본이다. 엔드 이펙터(로봇팔 말단 장비) 설계 및 탈부착 기술도 관건이다. 수술 도구와 환부를 한몸처럼 추적하는 3차원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IS는 다빈치에 쓰이는 소모성 엔드 이펙터 판매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다. 300만원가량인 다빈치 엔드 이펙터는 열 번 쓰면 사용이 불가능해 무조건 교체해야 한다.

세계 수술로봇 2위는 인공관절 임플란트 업체인 미국의 스트라이커다. 2013년 마코서지컬을 약 1조9450억원에 인수하면서 수술로봇 업체로 변신했다. 세계 수술로봇 시장은 IS와 스트라이커가 양분하고 있다.

두 업체를 추격하는 업체도 많다. 잠재시장 규모가 상당하다고 평가받는 척추관절수술 분야 로봇을 선점한 업체는 미국·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메드트로닉이다. 세계 최대 의료기기업체 중 하나인 메드트로닉은 지난해 이스라엘 척추수술로봇 업체 마조로보틱스를 약 1조8860억원에 인수해 새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아직 열리지 않은 한국 시장

수술로봇 시장성을 일찍이 간파한 글로벌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을 벌이고 있다. 심혈관중재시술로봇 마젤란을 갖고 있는 핸슨메디컬을 오리스서지컬이 약 940억원을 들여 인수하고, 오리스서지컬을 존슨앤드존슨이 4조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수술로봇 시장에 도전장을 낸 두 기업이 있다. 미래컴퍼니와 고영테크놀러지다. 미래컴퍼니는 다빈치를 모방한 복강경 수술로봇 레보아이를 지난해 내놨다. 가격과 엔드 이펙터를 모두 다빈치의 반값으로 책정했지만, 판매 대수는 아직 한 자릿수로 미미하다.

고영테크는 3차원 뇌수술용 의료로봇을 임상 중이다. 이미 시장에서 성능이 검증된 프랑스 메드텍S.A사의 뇌수술로봇 로사와 비슷한 기능을 갖췄다.

문제는 이런 ‘캐치업(따라잡기) 전략’이 성공할 수 있느냐다. 한 치의 오차가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로봇의 특성상 병원은 새 기기를 쓸 유인이 전혀 없다. 다빈치가 20년 가까이 세계시장 독주를 이어온 이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런 점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 중인 국내 수술로봇 기업 이지엔도서지컬이 주목받고 있다. 이 업체는 자체 개발한 유연내시경 수술로봇 K플렉스로 지난해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서지컬 로봇 챌린지 2018’에서 베스트애플리케이션 상을 받았다.

K플렉스는 3.7㎜ 소형 메스와 17㎜ 두께 팔을 갖고 있다. 뱀처럼 유연하게 휘어지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장 등에 투입돼 수술할 수 있다. 곧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신청한 뒤 임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영국 런던퀸메리대, 프랑스 소화기암연구소, 네덜란드 라드바우트대 등 각국 의료기관이 이지엔도서지컬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가톨릭대 성모병원 등과 협력할 예정이다. 국내 유명 사모펀드(PEF)는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김경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지능형로봇 PD(프로그램매니저)는 “시장가치가 어마어마한 수술로봇은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해외 기업이 놓치고 있는 틈새 분야를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간 테스트, 특허 200여개…이쯤돼야 수술로봇 출사표

1945년 일본을 초토화하며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우라늄 핵폭탄 ‘리틀보이’와 플루토늄 핵폭탄 ‘팻맨’. 20세기 초부터 핵폭탄 개발 비밀임무(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한 미국 테네시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1991년 한국인 처음으로 발을 들인 과학자가 있다. 뱀처럼 움직이는 유연내시경 수술로봇 업체 이지엔도서지컬의 권동수 대표(사진)다.

권 대표는 당시 미국에서 연마한 핵폐기물 처리 로봇기술을 20여 년의 연구개발 끝에 초정밀 수술로봇 기술로 탈바꿈시켰다. 유압크레인 등을 생산하는 국내 중장비업체 광림의 창업멤버인 그는 미 조지아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원격조종 기술을 연구했다. 실력이 소문나 오크리지연구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오크리지에 입사해 보니 거대한 ‘외국인 접근 금지구역’이 있었습니다.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 정제(사용후핵폐기물 고도처리)시설이었어요. 그 위험한 정제 작업을 누가 했겠습니까. 원격조종 로봇입니다. 높이가 20~30m에 달했습니다.”

권 대표는 1995년 귀국길에 오르면서 자신이 가진 로봇 제어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한국에선 핵폐기물 처리로봇 가능성이 없으니, 정반대로 사이즈를 확 줄여 수술로봇을 해보자”였다. 24년 전 이 생각의 열매가 지난달 창업식을 연 이지엔도서지컬이다.

그는 KAIST 교수로 부임한 뒤 20여 년간 각종 수술로봇을 개발해 동물실험에만 열중했다. 2년여 전부터 창업을 준비, 지난해 법인을 설립했다. 그가 보유한 로봇 관련 특허만 200개가 넘는다.

권 대표는 “요즘 학생 창업이 트렌드지만 가만히 보면 훈련 없이 총 한 자루 쥐고 전장에 나가는 학도병 같은 곳이 대부분”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을 준비 중인 퓨처로봇의 송세경 대표가 그의 제자다. 권 대표는 퓨처로봇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권 대표는 “수술로봇 수요를 조사해 보니 복강경이 35%, 관절경이 14%고 나머지 50%가량은 유연내시경으로 나왔다”며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선보인 유연내시경 수술로봇 ‘K플렉스’보다 한 단계 진화한 로봇 ‘포세이돈’도 개발 중이다. 포세이돈은 초소형 수술 팔 세 개와 별도 현미경을 장착했다.

권 대표는 이 밖에도 망막박리 수술로봇 이지마이크로, 요관내시경 수술로봇 이지유레테로 등도 개발하고 있다. 의료기기 품목허가와 임상 준비, 투자자 유치에 여념이 없는 그는 “복강경 수술로봇 다빈치 제작사인 미국의 인튜이티브서지컬(IS)을 넘어서겠다”고 자신했다.

대전=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