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할수록 영어 실력 '쑥쑥'…"재미와 공부 多 잡았죠"

입력 2019-05-07 17:39
교육혁신 이끄는 에듀테크 기업
(7) AI 영어학습 게임 '호두잉글리시' 만든 호두랩스

게임 속 캐릭터와 영어로 대화
30분간 120번 이상 말하게 돼
발음·강세 분석…취약점 파악


[ 박종관 기자 ] “유행처럼 등장한 에듀테인먼트가 망한 이유요? 재미가 없어서죠.”

김민우 호두랩스 대표(42)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어린이 영어학습 프로그램과 호두잉글리시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재미’를 꼽았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힐 수 있고, 공부는 그 다음 일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소리 크기 분석해 자신감 체크

호두잉글리시는 어린이 영어말하기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용 게임이다. 3차원(3D)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일상 속 영어회화 표현을 익히는 방식이다. 호두잉글리시를 30분가량 플레이하면 평균적으로 120번 이상 영어로 말하게 된다. 학습자가 소리 내 말한 영어 표현의 발음과 강세 등을 분석해 학부모에게 리포트 형식으로 전달한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얼마나 큰소리로 말했는지 데시벨(dB) 단위로 체크해 어떤 표현에 자신 있고, 어떤 표현을 어려워하는지까지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두잉글리시는 2008년 국내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에서 처음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선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유발한다며 ‘사회 악(惡)’으로 치부되던 시절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교육용 게임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게임 안에 들어가는 교육 콘텐츠는 청담어학원을 운영하는 교육회사 청담러닝과 힘을 합쳐 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 청담러닝 소속으로 엔씨소프트가 주관한 개발회의에 참석했다. 줄곧 교육업계에 몸담았던 김 대표는 그 회의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교육용 게임은 지나치게 교육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게임업체가 보기엔 정말 재미없는 콘텐츠였다”며 “게임업체들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막대기를 휘두르는 동작 하나까지 섬세하게 설계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에듀테크 기업 키드앱티브와 손잡고 호두잉글리시 운영권을 넘길 때 청담러닝에서 키드앱티브아시아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호두잉글리시의 성장성을 확인한 그는 팀원들과 함께 호두잉글리시 사업부를 직접 인수해 운영에 나섰다.

호두잉글리시는 철저하게 재미부터 챙겼다. 교육용 게임이지만 일반 게임처럼 세계관도 만들었다. 게임 속에서 왜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개연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했다. 게임과 학습에 대한 몰입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김 대표는 “아이가 호두잉글리시에 너무 빠져 있다며 플레이 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타이머 시스템을 마련해달라는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다”며 “재미있는 게임은 동기를 부여하고 몰입을 유도하는 최고의 교육 매개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 활용해 맞춤형 교육 제공

재미있는 게임 뒤에는 인공지능(AI) 학습분석 엔진과 빅데이터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호두랩스는 이를 활용해 게임에서 수집한 학습자의 음성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김 대표는 “5만 명에 달하는 누적 유저의 음성이 데이터화돼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며 “특정 연령의 학습자가 어떤 발음을 어려워하는지까지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제공에 활용한다.

호두랩스는 오는 11월 호두잉글리시 모바일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다. PC 버전에 이은 2단계 사업이다. 모바일 버전에는 현실과 게임을 연결하는 증강현실(AR) 시스템도 추가할 계획이다. 그는 “낱말 카드를 카메라에 인식시키는 방식 등으로 현실과 게임을 이어 학습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두랩스는 호두일본어와 호두중국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 해외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3단계 사업은 호두잉글리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해 외부 콘텐츠와 연결하는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영어 학습을 하는 중에 학습자가 셈에 약하다는 것이 AI 학습분석 엔진을 통해 발견되면 수학 강의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식이다. 실시간 화상영어 학습과 연계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김 대표는 “게임을 기반으로 한 교육 플랫폼의 발전 방향은 무궁무진하다”며 “직원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개발자들이 새로운 교육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의 최종 목표는 교육용 게임을 활용해 세계의 교육 격차 해소에 기여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교육은 교사 수가 한정돼 있어 지역별로 교육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게임을 활용한 온라인 교육은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일반 회사는 원가를 가격보다 낮게 맞추는 것에 집중하지만 교육 기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가격보다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