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대학에 땅·건물을 준다면 본교를 이전할까요?"

입력 2019-05-07 11:36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지난 5일 퇴임 편지




(강준완 인천주재기자) 인천에는 송도·청라·영종국제도시가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있습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자료에 따르면 인천시 전체 인구의 10%인 31만 명이 IFEZ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전체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지방세는 지난해 기준 8200억원으로, 인천시 전체 지방세 4조4658억원의 18.4%입니다. IFEZ에서 발생시키는 수출은 약 21조원으로 인천시 전체 수출액(45조원)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인천시의 대표 브랜드가 됐습니다.

IFEZ를 이끌었던 김진용 인천경제청장이 지난 3일 저녁 쿠웨이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마쳤습니다. 인천시의 사퇴 압박설, 사실상 경질 등 뒷말이 무성했지만 김 청장 스스로 지난 5일 인천경제청 직원들에게 보낸 퇴임편지를 공개하면서 중도하차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청장 재임시절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자평했습니다.

“일류대학에게 땅과 건물을 전부 제공하겠으니 본교를 IFEZ로 옮기라고 하면 이전 할까요?”

김 청장은 “글로벌 기업 IBM과 세계 무빙워크 생산업체 오티스에게 서울 지사를 인천으로 옮기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사무실 임차비가 없어서 송도로 가느냐’는 소리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송도국제도시의 최신 건물인 동북아무역타워의 입주하면 임대료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이전 조건에 대한 답변이었지요. 주요기업이나 대학을 IFEZ에 유치하기가 녹록치 않았다는 뒷얘기입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지방은 물론 세계서 모인 다양한 출신의 시민들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문화와 풍습이 존재하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 이 말을 했다면 서울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은 국제화가 아직 미흡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일류대학, 대기업, 글로벌기업을 서울에서 인천으로 유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청장은 “IFEZ에 입주한 일부 대학과 기업들에게 제공한 조건들에 대해 ‘특혜’ ‘퍼주기’라고 비판의 화살을 날리지만, 투자유치 현장은 서울이라는 강력한 자장(磁場)과 힘겹게 싸워나가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맥락과 상황에서 분리시켜 특혜, 퍼주기, 엉터리 등으로 단정하는 것은 업무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청장은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에게 “청라는 아름다운 보석의 도시”라며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청라국제도시로 연결하는 제3연륙교 개통, 테마파크형 복합쇼핑몰 청라스타필드 건설, 청라의료복합단지 조성, 하나금융타운 건립, 인천하이테크파크(IHP) 유치 등 청라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G시티 원안대로 허가를 내줬으면 청라주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고, 감사에서 처벌받는 사태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청라지역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최근 G시티 사업시행사가 8000실 규모의 생활형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요청을 김 청장이 거절하면서 사업이 무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청은 국제업무단지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오면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업무지구 역할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청라 주민들은 송도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청의 관심이 소홀하다는 서운함이 많았습니다. 국제업무단지 조성이나 쓰레기 소각장 이전 등 지역 현안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 했습니다. 일부에선 그 이유를 김 청장의 무능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송도·청라·영종국제도시가 서로 밀고 당기며 합심해야 발전에 가속이 붙는 운명공동체입니다. 인천의 미래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산업은 송도, 드론·금융은 청라, 항공정비산업 등 공항경제권은 영종국제도시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기업 유치는 세 곳 모두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습니다.

김 청장의 퇴진과 함께 경제청의 차장과 본부장 등 간부들도 새롭게 교체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청장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2,3급 공무원들이 줄줄이 정년퇴직·공로연수 등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지난해 전국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16억600만 달러 가운데 13억3000만 달러(80.1%)를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유치했습니다. 전국 7개 경제자유구역을 선도하는 맏형이라고 할만합니다.

신임 청장은 지속적인 외자유치, 특화산업 집중육성, IFEZ의 각종 개발사업, 스마트시티 등 IFEZ 개발 노하우 수출, 국제도시간 갈등 해소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추진력과 현명함을 갖춘 인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지인선임(知人善任·사람의 인품이나 재능을 잘 파악해 임용)의 인사가 되길 기대합니다. (끝)/ jeff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