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퀄컴, 26년 밀월관계에 균열 조짐

입력 2019-05-06 18:40
수정 2019-05-07 09:05
통신칩 특허 재계약 '이상 기류'

LG전자 재협상 요구에
퀄컴 2년째 미온적 대응


[ 황정수 기자 ] LG전자와 퀄컴의 인연은 1993년 시작됐다. LG전자가 퀄컴의 특허로 만든 통신칩을 구매하면서부터다.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LG전자는 통신칩을 쓰면서 휴대폰 출고가의 일정 비율을 퀄컴에 쥐여줬다. 퀄컴은 LG전자에만 리베이트를 챙겨주는 등 ‘남다른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이들 두 회사 간 균열이 시작된 건 2017년께부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협상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게 계기였다. 공정위는 퀄컴에 주요 휴대폰사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맺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LG전자와 퀄컴의 재계약은 지금까지 깜깜무소식이다. 이상 기류도 감지된다. 작년 말부터 LG전자는 공정위와 퀄컴 간 소송에서 노골적으로 공정위 편을 들고 있다.


안 풀리는 특허 라이선스 재협상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전자와 퀄컴은 현재까지 공정위에 특허 라이선스 관련 재계약을 보고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2016년 12월 말 퀄컴의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 남용’ 행위에 대해 1조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휴대폰사와 계약할 때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지 말고, 휴대폰사 요청이 있을 때 라이선스 계약을 재협상할 것”을 명령했다. 또 신규 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 수정·삭제 때는 공정위에 알리도록 했다.

업계에선 양사 간 오랜 밀월 관계를 감안했을 때 2년 넘게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건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 조사 때 공정위의 조력자 역할을 하며 퀄컴과 얼굴을 붉혔던 삼성전자조차 작년 2월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체결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LG전자의 재협상 요구에 퀄컴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협상이 안 풀리고 있다”고 전했다.

LG전자, 퀄컴 의존도는 계속 높아져

이를 두고 ‘크로스 라이선스(특허사용권을 상호 교환하는 것)’ 인정 범위 등을 놓고 두 회사의 견해차가 크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LG전자의 협상력이 삼성전자나 애플 등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기준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출하량 기준) 세계 1위(21.8%)였다. 스마트폰 출고가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아 돈을 버는 퀄컴에 삼성전자는 가장 큰 고객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라는 통신칩을 이미 개발해 퀄컴이 없어도 스마트폰을 생산할 수 있다. 재계약 과정에서 퀄컴과 대등한 위치에서 공정위 명령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LG전자의 상황은 다르다. 2014년 ‘뉴클런’이란 통신칩을 독자 개발했지만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17년 LG전자는 통신칩 생산을 포기했다.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오랜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통신칩 공급’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퀄컴 통신칩 의존도가 갈수록 커진 이유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LG전자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졌다. 한때 점유율 기준으로 삼성전자, 애플과 3강 체제를 형성했지만 지난 1분기 샤오미, 오포 등 중국 업체에도 밀렸다. 퀄컴으로선 LG전자가 더 이상 ‘주요 고객’이 아닌 셈이다.

LG전자가 꺼낸 ‘반격 카드’는 과징금 1조원을 놓고 진행 중인 공정위와 퀄컴 간 소송에서 공정위 편을 드는 것이다. LG전자는 작년 12월 ‘보조참가인’으로 합류해 법정에서 퀄컴의 표준필수특허 남용 행위를 공격하고 있다. 보조참가는 소송 진행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가 당사자 중 한쪽의 승소를 돕기 위해 관여하는 것이다. LG전자가 퀄컴의 아픈 곳을 건드려 특허 라이선스 재계약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