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무죄' 뒤집은 홍동기…美 고율관세 막은 정영진

입력 2019-05-05 17:21
수정 2019-05-08 13:36
Law & Biz

대한민국 법조인열전 (18)
'반듯한 모범생' 사법연수원 22기


[ 이인혁 기자 ]
사법연수원 22기(1991년 입소)는 해마다 2월이면 동기 모임을 한다. 22기여서 2월에 만나기로 했다.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50여 명씩 모여 얼굴을 본다. 스스로 ‘우애 하나만은 돈독했던 기수’라고 부른다. 사회에 나와서야 얼굴을 붉힐 일도 생겼지만 한솥밥을 먹으며 공부할 때는 이렇다 할 ‘말썽꾼’도 없었다. 22기에서는 두 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나왔다. 법원장과 검사장 등도 여럿이다. 변호사업계에선 팀장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파트너변호사들이 즐비하다.

김기영 이영진, 헌재도 ‘동반 입성’

김기영 이영진 두 헌법재판관은 지난해 10월 나란히 헌법재판소에 입성했다. 사법연수원뿐 아니라 헌재에서도 동기가 된 셈이다. 고향도 충남 홍성으로 같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정반대로 분류된다. 김 재판관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불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이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기본권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선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 없이 낙태죄 효력을 즉시 없애야 한다는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바른미래당 추천으로 최고 법원 재판관이 됐다.

두 재판관은 정치 성향은 물론 성격도 참 다르다. 김 재판관이 과묵한 편이라면 이 재판관은 반대다. 사법시험 32회 수석합격자인 이 재판관은 연수원 시절부터 친화력이 좋아 두루 어울렸고,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농담을 던지곤 했다. 동기들은 ‘국회 파견 1호’ 판사가 된 배경도 여기에서 찾았다. 그는 2009년부터 2년간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법원과 국회의 소통 업무를 맡았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법원 안에 있는 솔로몬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홍동기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대표적인 ‘성범죄 엄단’ 판사다. 홍 실장은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항소심에서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징역 3년6개월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다움’ 대신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며 안 전 지사에게 실형을 내려 화제를 모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근무한 구회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파산·회생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담당해 경영정상화 길로 들어선 기업들 가치가 2조원에 달한다. 손봉기 대구지방법원장은 판사들 추천으로 탄생한 1호 법원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장추천제를 대구지법에 시범 도입하면서였다. 박이규 춘천지법 부장판사는 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강원랜드 수사로 뒤틀린 검찰 동기들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연수원 41기)가 촉발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은 김우현 양부남 이영주 등 22기 동기 검사들의 관계를 크게 뒤틀었다. 지난해 안 검사는 춘천지검 근무 시절 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수사할 때 사건에 연루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선배 검사들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윗선으로는 이영주 당시 춘천지검장과 김우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 연수원 22기 두 명이 지목됐다. 의혹이 일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별도의 수사단을 꾸리고 양부남 광주지검장을 단장(22기)으로 임명했다. 양 단장은 “문 총장이 약속과 달리 지휘권을 행사해 권 의원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았다”고 반발했다. 그는 연수원 동기 김 부장을 기소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항명 검사’ 양 단장은 의정부지검장이 됐고, 김 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춘천지검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이동하면서 일선 수사업무에서 손을 뗐다. 4남매의 엄마인 이 부장은 ‘여성 지검장 2호’로 22기 동기들인 김진숙, 박계현 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와 함께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며 우먼 파워를 자랑했다.

검찰에는 금융범죄 중점청을 이끄는 권익환 서울남부지검장이 있다. 조직폭력과 마약 수사에서 이름을 날린 ‘강력통’ 최윤수 전 부산고등검찰청 차장도 22기다. 최 전 차장은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2차장을 지냈을 때 불법사찰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22기에서는 우윤근 주(駐)러시아 대사도 유명하다. 그는 30대 중반의 다소 늦은 나이에 연수원 생활을 했다. 동기들을 잘 챙기고 공부보다 대외 활동을 하느라 바빠 ‘떡잎부터 정치인이 될 줄 알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호사 활동을 하다 고향인 전남 광양에서 내리 세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국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무죄의 달인'으로 불린 김재환

법무법인 화우의 최상부엔 22기가 많다. 정진수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고, 유승룡 변호사와 류병채 변호사는 각각 송무부문장과 자문부문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대표변호사는 키코(KIKO), 주가연계증권(ELS) 등과 관련한 사건을 처리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통상팀을 이끌고 있는 정영진 변호사는 사법시험뿐만 아니라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도 합격한 ‘고시 3관왕’이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반덤핑 사건을 맡아 미국 정부가 처음에 부과하려 한 고율(40%)의 과세를 무마시켰다. 류용호 변호사와 오정면 변호사는 각각 김앤장과 태평양에서 건설부동산 분야 수장이다. 류 변호사는 인천 청라지구 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 관련 소송에서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서 발주처도 시공사와 협력해야 하며 실패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최초 판결을 이끌어냈다. 오 변호사는 경인운하 해지 지급금 소송과 송도신도시 개발 자문을 했다.

광장 핀테크팀의 윤종수 변호사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통한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와 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 등을 자문했다. 율촌에는 지식재산권(IP) 전문가 김철환 변호사가 있다. 그는 특허법원 판사 출신으로, 다수의 지식재산권 관련 논문 등을 썼을 만큼 전문성을 확보했다. 김재환 바른 변호사는 별명이 ‘무죄의 달인’이다. 경주마 보험사기 사건, 재건축조합원들의 업무 방해 사건 등에서 피고 측 변론을 맡아 무죄를 받아냈다. 얼마 전 건설회사끼리 벌어진 2000억원대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