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듀! 퍼스트클래스

입력 2019-05-02 18:17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인 무명화가 잭은 삼등실에 머문다. 그와 사랑에 빠진 로즈는 일등실 승객이다. 당시 승선권 가격은 삼등실이 35달러, 일등실이 2500달러였다. 경제학에서는 표 가격에 따라 선실 등급을 나누는 것을 ‘가격차별’이라고 부른다. 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접점에서 결정된다.

미국 서부개척시대인 1800년대 역마차에도 좌석이 3등급으로 분류돼 있었다. 언덕이나 진흙탕을 만났을 때 일등석 승객은 내릴 필요가 없고, 이등석 승객은 내려서 걸어야 했다. 삼등석 승객은 마차를 밀어야 했다. 이 역시 가격차별의 결과였다. 1900년대 중반에 도입된 항공기 좌석도 여객선과 역마차 등급에서 따왔다.

1960년대까지는 항공기에 지금의 일등석(퍼스트클래스)과 일반석(이코노미클래스)만 있었다. 1970년대 보잉747 등 대형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중간 등급인 이등석(비즈니스클래스)이 생겼다. 이후 항공사마다 서비스 고급화 경쟁을 벌이며 ‘일등석 마케팅’을 펼쳤다. 중동 지역 항공사들은 샤워 부스에 더블베드 스위트룸까지 선보였다.

‘하늘 위 궁전’으로 불리는 일등석은 비싼 만큼 좌석 수가 적다. 대한항공 A380은 퍼스트클래스 12석, 비즈니스클래스 94석, 이코노미클래스 301석으로 구성돼 있다. 좌석 넓이는 일등석이 0.73평으로 일반석(0.13평)의 5.6배다. 그만큼 쾌적하고 편안하다.

일등석 승객은 공항에서부터 전용 체크인 카운터와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비행기에 오르내릴 때도 전용 게이트를 이용한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에 일등석 전용 터미널을 따로 지었다. 이 터미널 라운지에는 유럽연합(EU) 입국 심사관도 배정돼 있다. 수하물은 일일이 커버로 포장돼 다른 승객들 짐보다 먼저 나온다.

승객들도 남다르다. 일등석 승무원 출신의 일본인 미즈키 아키코는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비행기 일등석”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항상 책을 읽고 메모하느라 필기구를 갖고 다닌다는 점을 성공의 한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경기 부침에 따라 일등석 이용률과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항공사들에 이어 대한항공이 다음달부터 일등석을 더 줄인다고 한다. 그러면 국제선 일등석의 70%가 없어진다. 그만큼 비즈니스클래스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까. 이 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달렸겠지만, 실속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