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원인인가 결과인가'
서울대 인지과학硏 심포지엄
[ 윤희은 기자 ]
“‘게임중독’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질병으로 치부하는 ‘의료화 현상’의 폐해입니다.”
29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게임중독(gaming disorder), 원인인가 결과인가’ 심포지엄에서 이경민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사진)은 “문제는 게임을 과소비하거나 과몰입한 경우이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게임과학포럼과 서울 인지과학연구소 주최로 열렸다.
이 소장은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과잉 의료화 현상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질병의 개념으로 게임중독이 등장한 것은 사회현상을 과도하게 의학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그릇된 방식 때문”이라며 “이 같은 부정적 인식 탓에 뇌 인지 강화라는 게임의 긍정적 효과가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과몰입을 일종의 질병으로 보고 ‘중독’ 항목에 등재하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열렸다. 참석한 학자들은 WHO를 비롯한 사회 곳곳의 기관들이 모든 게임을 하나로 묶어 위험한 콘텐츠로 취급하는 행태가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중독을 규정할 수 있는 학술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이 나왔다”며 “게임마다 특성이 다르고 이용층이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고 막연하게 진행한 연구·실험 결과가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게임중독을 약물중독처럼 독립적인 장애로 취급할 만한 근거도 없다는 주장이다. 크리스토퍼 J 퍼거슨 미국 스텟슨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병적인 게임 집착증을 야기할 수는 있으나 게임을 하는 것이 ADHD를 야기하진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약물남용과 게임중독을 동일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게임 그 자체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게임은 인지능력 트레이닝에 도움이 된다”며 “향후 우리 일상에 더욱 깊숙이 들어오게 될 미디어 콘텐츠인 만큼 이걸 잘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