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프랑스' 내건 마크롱 "소득세 내릴테니 더 많이 일하자"

입력 2019-04-26 17:48
수정 2019-04-27 16:31
'週 35시간 근로제' 개혁 시사


[ 설지연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은 근로소득세를 대폭 줄이는 대신 근로시간은 늘려 ‘일하는 프랑스’가 되자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또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인 국립행정학교(ENA)를 폐지해 공무원 사회의 엘리트주의를 없애겠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일하는 국민과 중산층에게는 소득세를 대폭 내리려 한다”며 감세정책 추진 계획을 밝혔다. 소득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는 50억유로(약 6조4500억원)로 추산했다. 그는 부족한 세수는 정부 지출과 기업들의 조세 감면을 줄여 메우겠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면서 “재정이 줄어드는 만큼 국민이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가 이웃 나라보다 덜 일한다”며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유지해온 ‘주 35시간 근로제’를 손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번 대국민 담화는 지난해 11월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에 마크롱 대통령이 내놓은 답변이다. 프랑스에선 유류세 인상 등으로 서민층의 생활 수준이 낮아졌다는 불만이 누적되며 대규모 시위가 6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노란조끼' 아닌 佛전체 본 마크롱…부유세 부활 거부·관료 엘리트주의 타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2시간 넘게 진행한 대국민 담화에서 “집권 후 2년 동안 추진해온 개혁이 잘못된 것인가 자문해 봤더니 옳은 방향이었다”며 그동안 추진해온 주요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17년 5월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철도 개편, 공무원 감원, 실업수당 개편 등 사회 전반에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가 담뱃세, 유류세 등 생활 밀접형 간접세를 대폭 인상하면서 서민층의 생활고가 심해졌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는 ‘노란조끼’ 시위로 번졌다. 이 시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 말 유류세 추가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여론 진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또 3개월간 프랑스 전역을 돌며 ‘사회적 대토론’을 열고 각계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노란조끼 시위대의 요구 사항에 맞춰 주요 정책 결정에서 국민투표를 확대하는 등 직접민주주의식 참여를 늘리겠다고 했다. 또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이 파리로 집중된 데 대한 반발을 고려해 지방에도 권한을 일부 이양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월 2000유로(약 260만원) 이하 소득자에겐 연금을 물가 상승분에 연동해 지급하겠다는 서민 유화책도 내놨다.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다시 걸겠다는 의지도 재차 강조했다. 특히 1945년 설립돼 국가 엘리트 관료를 육성해온 대표 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를 폐지하겠다고 공식화했다. ENA는 마크롱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하다.

ENA는 당초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능력 있는 관료를 키우기 위해 세워졌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과도한 권력 집중의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ENA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관·재계 엘리트층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 양성 제도를 개혁할 것”이라며 “현 공무원 선발 제도는 능력 위주의 시스템이 아닐뿐더러 공직자에겐 평생고용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 노란조끼 시위대의 주요 요구사항이던 부유세 부활 요구도 거부했다. 프랑스 정부는 2017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유세 과세 대상을 고액 부동산 소유자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부유세를 폐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부유세 축소는 부자들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이번 담화는 바꿔야 할 것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유지해야 할 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타깃은 일부인 노란조끼 시위대가 아니라 프랑스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