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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좀 마셔본 기자의 주세법 레슨
[ 김보라 기자 ] 술에 매기는 세금이 바뀐다고 한다. 갑자기 나온 얘기는 아니다. 3년 전에도, 지난해에도 여러 번 논의만 하다 끝났다. 50년 된 주세 체계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소주, 맥주, 위스키, 와인, 전통주 등 술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고 있다. 용어도 알아먹기 힘들다. ‘종량세’ ‘종가세’ ‘과세표준’ ‘수입신고가’ 등. 술 마시는 사람들은 왜 세금 때문에 시끄러운지 이해하기 힘들다. 왜 주세 체계를 바꾸려는 건지, 바꿔야 한다면 그냥 하지 왜 논란만 되풀이하는지. 결국 나의 ‘음주 라이프’는 뭐가 어떻게 바뀌는 건지. 그래서 한번 들여다봤다.
한 잔 = 세금이 뭐가 어때서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맥주다. 지난 10년간 국내 술 생산량의 50% 이상이 맥주였다. 그다음이 소주(약 25%)와 막걸리(약 10%)다.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내는 세금은 얼마일까. 1000원에 공장에서 갓 나온 맥주 한 병에는 이것저것 합쳐 세금이 1036원 붙는다. 판매가격은 최소 2036원부터 시작한다. 애주가들은 세금으로 애국하는 셈이다. 소주도 세율은 같다. 술의 원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종가세(從價稅)’라고 부른다. 좋은 재료를 넣어 맛있고 비싸게 만든 술은 어떨까. 원가가 비싸니 세금도 더 붙는다. 화요 같은 술이 그래서 비싸다. 여기까지는 생각보다 쉽다. 50년간 뭐라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술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2010년께부터 수입맥주가 몰려 들어온 게 파장을 불러왔다. 지난해 국내 맥주회사는 연간 매출의 44%를 세금으로 냈다. 반면 하이네켄, 칭다오는 각각 매출의 17%, 28%만 세금을 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논란에 기름 부은 사람은 또 있었다. 수제맥주를 만드는 장인들이다. 이들도 세금을 국내 회사들과 비슷하게 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까.
두 잔 = 수입맥주 싼 게 문제냐?
하이네켄 세금의 비밀을 알아볼 차례다.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비밀’에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퀴즈. 국내 맥주회사는 세금을 어디다 낼까? 중학생도 맞힐 수 있는 수준. 국세청이다. 하이네켄을 들여오는 하이네켄코리아는? 국세청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관세청에 세금을 낸다. 이 대목에서 한 잔 해야 한다. 결정적 장면이다. 국세청은 국가정보원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있는 조직이다. 국내 술 회사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원가를 속이고, 세금을 덜 내려는 무모한 회사는 없다. 관세청은 다르다. 수출 수입품의 세금을 관리한다. 하이네켄이 원가를 얼마라고 하건 이를 검증할 방법이 별로 없다. 외국에 있는 공장에 일일이 가서 따져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입맥주는 가격을 ‘내 맘대로’ 신고해도 된다. 관세청에 “이 술 원가 400원이다”라고 신고하면 그만이다. 세금이 붙어도 820원이면 된다. 살짝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운송비를 포함해 원가가 1000원이라고 치자. 관세청에 500원에 신고하면 세금이 붙어 대략 1100원부터 팔 수 있다. 한국 맥주는 아까 본대로 2036원부터 시작한다. 마케팅 비용에 유통 마진을 붙이면 2500원에 팔아도 남는 게 없다. 당신이 외국 술을 수입하면 얼마에 팔까. 1500원에서 2000원 사이에 팔면 무조건 장사가 된다. 국산 맥주보다 싸고, 외국 유명 브랜드까지 붙어 있는데 손이 어디로 가겠는가.
편의점에서 하는 ‘수입맥주 4캔 1만원’ ‘수입맥주 6캔 1만원’ 행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때마침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되는 맥주는 작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가 됐다.
외국 여행할 때 본 맥주를 2000원, 2500원에 살 수 있다니. 수입맥주 점유율은 20%까지 치솟았다. 작년 맥주 수입액은 3억달러를 넘어섰다. 이쯤에서 “외국 술 싸게 마시는데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답은 다음 잔에.
세 잔 = 술, 패키지의 함정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국산 맥주 맛없어. 하이네켄 아사히만 마셔.” 얼마 전 이런 사람들 몇을 데리고 행사를 갔다. 하이네켄 아사히 스텔라 버드와이저 하이트 카스를 준비했다. 상표 없이 잔에 따라 놓고 사람들에게 가장 맛없는(?) 국산 맥주를 골라보라고 했다. 하이트를 하이네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주당, 아사히를 카스라고 말하는 술꾼까지. 다들 허탈해했다. 10명 중 9명은 카스와 하이트를 구별하지 못한다. 물론 밀맥주, 에일맥주 등은 다른 걸 웬만하면 안다. 진하니까.
이런 일은 왜 벌어질까.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는 “맥주의 맛은 생산지와 가까워 가장 신선하게 바로 유통될 때 최상의 맛을 낸다”고 말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하이네켄과 아사히는 이런 조건과는 관계가 없다. 그 패키지가 우리의 뇌를 움직여 맛있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탁월한 입맛을 가진 소수는 예외다. 이 불공정한 게임이 문제가 안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네 잔 = 그럼 종량세가 뭔데
그래서 나온 게 종량세다. 가격이 아니라 술의 양과 알코올 도수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생산량이 많을수록, 도수가 높을수록 세금이 늘어나는데 도수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한다.
작년 카스에는 L당 1200원의 세금이 붙었다. 종량세로 바뀌면 835원 정도가 붙을 것이라고 한다. 알코올 도수가 낮기 때문이다. 또 수입맥주는 세금으로 ‘장난’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공정한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반론을 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수입맥주만 비싸지는 거 아니냐. 국산 맥주회사들은 담합해서 가격 안 내리면 네가 책임질래?”
수입맥주는 전체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래도 위안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에서 인기 있어 비싸게 팔리는 일본(아사히)과 아일랜드(기네스)산 맥주는 더 싸질 가능성이 있다. “L당 850원의 세금을 매긴다면 일본 맥주는 지금보다 117원가량, 아일랜드 맥주는 176원가량 가격이 더 내려간다”는 게 맥주회사 사람들의 얘기다. 또 다른 위안은 개성 있고, 맛있는 수제맥주가 더 많아진다. 작년까지 수제맥주협회가 집계를 했더니 전국에 103개 양조장이 생겼다. 제주맥주 강서맥주 대강맥주 등을 맛본 사람이 많다. 하지만 비싸다. 한 병에 음식점에서 1만원 가까이 판다. 세금이 떨어지면 이 가격이 싸진다. 맥주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대기 중인 청년들이 곳곳에 양조장을 차릴 가능성이 많다.
다섯 잔 = 소주가 문제인데
이쯤 되면 맥주는 종량세로 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정부가 몇 년째 고민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술’ 때문이다. “세금의 형평성을 고려해 모든 술에 대한 세금을 한 번에 바꿔야 한다”는 게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맥주 때문에 세금 체계를 바꾼다고 했더니 다른 술을 생산 판매하는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소주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도수와 판매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 되면 16~25도인 소주의 가격은 오를 게 뻔하다. 매출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진정한 소주 애호가들은 곧장 반정부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지방소주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안 그래도 참이슬, 처음처럼 브랜드에 밀리는데 지역 소주 가격까지 올려놓으면 우린 죽으라는 얘기”라고 한다.
반기는 사람들도 있다. 화요 등 프리미엄 증류주를 제조하는 곳들이다. 화요를 만드는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은 “종량세로 바뀌면 더 맛있는 고급 술을 잘 만들어 싸게 팔 수 있고 수출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와인도 있다. 100만원대 고가 와인 가격은 낮아지고, 저가 와인의 가격은 소폭 오를 것 같다.
세금은 어떤 세금이건 복잡하다. 다만 술을 마시며 세금 얘기하다 열받아서 한잔 더 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