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자동 속도제한' 도입 추진…車 고성능 경쟁 급제동 걸리나

입력 2019-04-25 16:57
수정 2019-04-25 17:02
Auto Times의 확대경


시속 200㎞로 달리다가 제한속도 100㎞ 표지판을 인식하면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자동차 스스로 최고 시속을 100㎞에 맞춰 정속 주행한다. 일정 거리를 달리는 동안 제한속도 표지가 인식되지 않으면 가속페달에 반응하고 또다시 표지판이 인식되면 속도가 제한된다. 만약 표지판이 촘촘히 설치돼 있다면 이동하는 동안 제한속도를 아예 넘을 수조차 없다. 이 경우 굳이 페라리 또는 포르쉐 등에 400마력짜리 엔진이 필요할까를 되물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고성능 스포츠카라도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표지판이 나오기만 하면 옆 차선의 모닝 또는 스파크와 같은 속도를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그간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야 한다’는 명품 자동차의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재미 삼아 생각한 것 같지만 실제 이런 규제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주목된다. 유럽연합(EU)이 2022년까지 다양한 안전장치 의무화를 도입하면서 자동 속도 제한장치를 넣기로 했다. 운전자 의지 및 주변 교통 여건과 관계없이 제한속도 표지판을 자동차가 인식하면 그 이상 속력을 낼 수 없는 장치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다.

그리고 제도 도입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EU 이사회와 집행위원회(EC)가 이견 없이 새로운 안전 기술을 의무화하는 일반안전규정(GSR) 개정안에 잠정적으로 합의까지 마쳤다. 게다가 영국은 EU 탈퇴 여부와 무관하게 같은 제도를 적용한다고 발표했으니 도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시기에 따른 기술 도입도 정했다. 올해 운전자 졸음과 주의 분산 경고 기술을 의무화했고 2020년부터는 보행자와 자전거 보호를 위해 자동 제동 장치를 반드시 달아야 한다. 또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에는 지능형 속도 지원 기능이 적용돼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능형 속도 지원 기능’이다. 주행 중 속도 제한 표지판을 인식하면 엔진 시스템에 개입해 속도를 제어한다. 이때 속도는 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으로 측정된다. 일단 인식하면 제아무리 가속페달을 밟아도 제한속도 이상을 넘지 않는다. 유럽의회는 해당 기능을 의무화하면 2038년까지 매년 2만5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4만 명 이상의 중상자를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지능형 속도 지원이 자율주행 시대를 촉진시킬 경우 2050년이면 사망 및 중상자 ‘0’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해당 기능이 자동차에 적용될 경우 지금처럼 배기량 1.0L당 100마력 이상을 뽑아내는 ‘고성능’ 버전의 존재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2020년까지 ㎞당 95g 이하에 맞춰야 하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로 고성능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능형 속도 제한 기능은 빠르게 달리려는 인간의 기본 욕망을 억제하는 제도여서다. 아직은 평균 배출가스에 근거해 고성능 제품을 한정 생산 방식으로 내놓지만 환경 규제는 자동차회사에 ‘고성능’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중이다. 특히 뒤늦게 고성능 시장에 뛰어든 제조사에는 더더욱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럼에도 고성능을 유지하려면 친환경차 판매를 늘려야 한다. 자동차의 성격이 점차 고성능과 친환경이라는 양극화로 치닫는 배경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