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브랜드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관리도 강화
올해 중국의 가장 큰 대외 행사인 ‘제2회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25일 베이징에서 시작됐습니다.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37개국 정상과 유엔 사무총장,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 90여 개의 국제기구 수장, 113여개국 고위급 대표단 등 5000여 명이 참석하는데요. 첫 날엔 정책 및 무역 소통 등 12개 분과 논의와 세계 900여 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참여한 기업가 대화가 진행됐습니다.
올해 포럼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 및 군사, 외교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데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국 정부는 첫 날부터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채무 함정론’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이강(易綱) 중국 인민은행장은 “앞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할 때 협력 상대국의 채무 부담 능력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투자 및 융자를 결정할 때 합리적으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면서 “한 나라의 전체적인 채무 부담능력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채무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지부티 등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이 과도한 빚에 시달리다 결국 전략적인 인프라 사업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기는 등 ‘부채의 덫’에 빠지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등 서방 주요국들은 일대일로를 겨냥해 중국의 패권 전략이자 ‘채무 함정 외교’라고 비판하며 이번 포럼에 정상급 인사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행장은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저개발 상태인 참여국들에 경제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일대일로 사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려 애썼는데요. 채무 증가가 인프라 시설의 완비, 민생 개선, 노동 생산성 제고, 빈곤율 하락과 이어진다면 이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투자는 새 자금 흐름을 만들어내고 한 나라의 상환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이 행장은 앞으로 일대일로 사업이 중국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중심이 돼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과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미지 개선과 브랜드 관리에 적극 나섰다고 보도했는데요. 중국 학자와 전직 관료들로 구성된 일대일로 정상포럼 고문단이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중국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는데요. 일대일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된 이유 중 하나로 너무 많은 중국 기업과 지방정부가 그들의 사업에 ‘일대일로’란 이름을 갖다 붙이면서 일대일로의 이미지가 나빠진 탓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왕이웨이 인민대 교수는 “너무나 많은 사업이 ‘일대일로’란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일대일로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며 “일대일로의 핵심 사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해 이런 혼란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달 초 공지를 통해 일대일로 웹사이트 등을 함부로 개인적, 상업적 목적에 사용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태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는데요. 중국 싱크탱크인 중국세계화연구소의 왕후이야오 대표는 “일대일로가 성공하기 위해선 중국 국유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이들이 입찰 과정 등에 참여토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주도가 아닌 다국적 참여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