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주총서 주요 직책 장악 포석
결별 원하는 닛산, 즉각 거부
[ 김동욱 기자 ] 프랑스 르노가 일본 닛산자동차에 경영 통합을 제안했다. 두 회사의 경영 통합을 추진했던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연합) 회장이 지난해 11월 배임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된 이후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양사 통합론이 다시 부상한 것이다. 그동안 닛산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온 르노가 갑작스럽게 공세적인 경영 통합 요구를 제기하고 나서자 닛산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르노의 전격적인 통합 제안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르노는 이달 중순 닛산자동차에 경영 통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이 지난 8일 주주총회에서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을 이사로 선임한 직후 르노 측이 이 같은 제안을 했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전했다.
르노 측의 경영 통합 시도에 줄곧 반대하며 독자 노선 강화를 추구해온 닛산은 즉각 르노 측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22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르노 측의 경영 통합 제의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닛산의 실적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르노 측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르노의 이번 경영 통합 제안은 세나르 회장의 의향에 따른 것이라는 전언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르노는 닛산이 경영 통합안을 거부할 경우 6월 닛산 주총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 이상의 주요 직책에 르노 출신 임원을 대거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자동차의 3사 연합은 상호 지분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불안정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1999년 경영 위기에 처했던 닛산에 출자하면서 르노는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르노와 미쓰비시자동차 지분 15%, 3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법에 의해 닛산은 르노에 대한 의결권이 없다. 지분 구조상으론 닛산이 르노에 종속된 형태지만 자동차 판매량과 기술력 등에선 닛산이 르노를 월등히 앞서 닛산의 경영권을 둘러싼 두 회사 간 시각차가 커지고 있다.
‘동상이몽’ 日·佛 연합…갈등 본격화
일본 언론들은 르노 측이 닛산을 흡수 통합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살얼음판을 걷듯 유지돼온 양사 간 우호 기류가 긴장관계로 일변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1월 일본 정부에 르노와 닛산 간 경영 통합 의사를 타진했으나 뚜렷한 답을 듣지 못했고, 지난달 세나르 회장이 “지금은 (경영 통합) 추진하지 않고 있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곤 전 회장의 체포를 둘러싼 두 회사 간 시각차도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프랑스 정부의 경영 통합 압력을 받은 곤 전 회장이 지난해 9월 사이카와 CEO에게 르노와 닛산 간 경영 통합 의향을 전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일본인 경영진이 일본 검찰에 곤 전 회장의 비리를 고발해 ‘쿠데타’를 벌인 것이라는 얘기가 르노 등에 적지 않게 퍼져 있다.
반면 닛산 측은 곤 전 회장 시절의 무리한 양적 확대정책이 기업 실적을 악화시켰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곤 전 회장 실각 후 닛산 경영위원회 체제를 도입해 르노의 입김에서 벗어나려는 구상도 구체화해왔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르노와 닛산 간 경영 통합 등의 문제는 당사자가 충분히 납득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닛산을 측면 지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곤 전 회장 체포 후 르노와 닛산이 경영권 갈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6월 닛산의 정기 주주총회를 계기로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