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EU] 마이너스 금리 더 내리려 하는 스위스

입력 2019-04-22 17:47
수정 2019-04-22 17:55

스위스 중앙은행이 현행 -0.75%(연리)로 유지 중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미 마이너스의 영역에 있는 기준금리를 더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라고 시장금리가 꼭 마이너스가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시장금리가 그 나라의 기준금리 방향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기준금리가 과하게 낮아진다는 것은 자칫 국가 경제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스위스는 왜 이런 일을 하려 하는 것일까요?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토마스 요르단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많이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더 내릴 여력이 있다”며 통화 정책을 더 완화적인 방향으로 가져갈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어 “필요하다면 중앙은행 보유 자산도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적완화 시행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미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임에도 스위스프랑의 통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 통화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그만큼 자국 통화량이 증가해 외환시장에서 외화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발표하면 보통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스위스프랑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스위스프랑은 미국 달러, 일본 엔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스위스 경제에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조금이라도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은 어김없이 스위스프랑을 찾게 됩니다. 요즈음과 같이 글로벌 경제에 잡음이 많은 시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스위스프랑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자연히 통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스위스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인 사실은 투자자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통화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수출 악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국 화폐 가치가 상대적으로 오르는만큼 외환으로 표시되는 자국 상품 가격도 그만큼 뛰기 때문입니다. 스위스는 2015년을 시작으로 유로화에 대한 통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자국 물품 수출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통화 약세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스위스프랑 가치는 4년 전과 비교해 약 7%가량 오른 상황입니다.

통화 강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물가가 하락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환율이 낮아지면서 수입 물가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와 같이 외국으로부터 다양한 물품을 수입하는 소국개방형 국가 입장에서 통화 강세 지속은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실제 스위스의 지난 4년 간 연간 물가상승률은 각각 -1.31%(2015년), -0.01%(2016년), 0.84%(2017년), 0.69%(2018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0%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스위스와 같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국가는 더 많아질 전망입니다. 스위스와 같은 비유로존 유럽 국가인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마이너스 금리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에 0%이던 기준금리를 -0.1%(연리)로 내린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행 0% 기준금리를 운용 중인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유로존 경기 악화를 이유로 금리를 더 낮출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금리 인상을 단행 중이던 미국 중앙은행(Fed)도 올 초에 연 2.25~2.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한다 밝힌 데 이어 재차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