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뉴욕의 상징이 된 '비계'

입력 2019-04-22 17:12
김현석 뉴욕 특파원


[ 김현석 기자 ]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상징으로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자유의여신상, 센트럴파크 등이 꼽힌다. 하지만 진반농반으로 ‘비계(scaffolding)’라고 말하는 뉴요커가 의외로 많다. 공사할 때 높은 데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을 말한다.

10여 년 전 맨해튼에 왔을 때 인도에 수많은 비계가 설치돼 있어 ‘대규모 공사가 벌어질 때 잘못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파원으로 일하다 보니 평균적으로 빌딩 10동 중 3~4동엔 항상 비계가 설치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뉴욕에선 재개발과 재건축, 리모델링 등이 사시사철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 경쟁력은 끊임없는 재개발

지난달 맨해튼 서부 허드슨야드에선 초고층빌딩 6동이 완공된 가운데 개장식이 열렸다. 공사는 2025년까지 계속된다. 28에이커(약 11만3300㎡) 규모의 철도차량기지 위로 두께 1.8m 콘크리트 플랫폼을 쌓고 그 위에 16개 초고층빌딩을 짓는 사업이다. 총 250억달러(약 28조5450억원)가 투입되는 미국 민간 부동산 개발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다.

이곳은 오래된 기차역과 주차장, 그리고 잡초만 무성한 ‘맨해튼의 골치’였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2005년 재개발 사업에 나섰다. 뉴욕시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와 부동산개발사 릴레이티드의 합작으로 2012년 12월 착공했다. 뉴욕주와 뉴욕시는 24억달러를 들여 지하철 7호선을 연장해주는 등 총 60억달러 규모의 혜택을 제공했다. 더 많은 일자리와 세수를 기대해서다.

‘슬럼의 대명사’인 할렘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퀸스와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등에 수많은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렇게 활력이 붙은 재개발·재건축은 뉴욕시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높였다.

작년 9월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가 맨해튼의 52층 본사 건물(270파크애비뉴)을 70층으로 재건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5년간 공사가 이뤄진다. 뉴욕시는 맨해튼의 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7년 용도계획을 바꿨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례로 JP모간의 재건축을 허가해줬다. 빌 드블라시오 뉴욕시장은 “좋은 직장과 현대식 건물, 끊임없는 개선은 뉴욕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값 뛴다며 개발 않는 서울

한국의 사정은 뉴욕과 딴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부동산값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용산과 여의도 개발계획을 전격 중단했다. 재건축에 부담금을 때릴 뿐 아니라 이제 인허가까지 내주지 않으려 한다.

초고층 건물도 못 짓게 한다. 롯데월드타워의 인허가를 내줬다가 대통령까지 수차례 검찰 수사를 당했다. 10조원을 들여 땅을 샀는데도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5년간 착공하지 못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100층 넘는 건물을 짓기 위해 술집부터 만들어 전방위 로비를 한 게 부산 엘시티 사태다.

과거 일본 도쿄 인근의 텅 빈 신도시에 갔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민 고령화, 부동산값 하락 등으로 재개발·재건축 가능성이 사라지며 새로운 인구 유입이 끊기자 도시 자체가 죽어버린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도심 한가운데도 텅 빈 빈민가가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활력이 사라져서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다. 경제 활력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금 재개발·재건축을 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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