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포 제기 첫 토지수용 ISD 신속절차로 오는 8월 결론
한미FTA 보호대상 여부 관건...정부 30년 토지보상제 수술 피하나
(안대규 지식사회부 기자) 미국 동포 한 명이 한국의 토지보상제도의 근간을 바꾸고 수십조원의 토지보상금을 주도록 해야할 수 있다는 소식 들어보셨는지요. 미국 국적의 동포가 제기한 33억원짜리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이야기입니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해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미국 동포 서모씨가 작년 9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첫 ‘공시지가 토지 수용’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신속절차’로 진행됩니다.
통상 ISD 절차가 ‘중재의향서 접수’부터 최종 판정까지 2~3년이상 걸린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빨리 결론이 나게 된 것이죠. 오는 8월께 판정이 나올 전망입니다. ISD 제기 1년도 안돼 결론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는 9월 이후 연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5조3000억원 규모의 론스타 ISD판정결과 보다 앞서 것이죠. 정부가 패소해 취소소송이 진행 중인 이란의 다야니가(家) 보다 빨리 결론이 나게 됩니다.
22일 중재업계에 따르면 유엔국제상거래위원회(UNCITRAL) 산하 중재판정부와 정부, 서씨측은 지난달 14일 화상회의를 열고 신속절차 일정을 합의했습니다. ‘본안전 이의제기’라고도 불리는 신속절차는 중재 당사자간 쟁점이 되는 2~3가지에 대해서만 신속하게 결론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무부는 서씨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보호해야할 투자자가 아니고, 당시 부동산 취득도 보호해야할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난 2월 본안전 이의 제기를 신청했습니다.
서씨가 제기한 ISD는 국가배상 요구 규모가 33억원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중 가장 규모가 작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패소할 경우 30여 년간 이어져온 토지 보상 제도에 일대 변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부는 승소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 ISD가 본안으로 진행되게 되면 우리나라 토지보상제도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를 받게된다”며 “만약 패소하면 한국에서 토지를 수용당했던 동포와 외국인들이 일제히 비슷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합니다.
보상 규모만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토지보상 규모는 10조~20조원이고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토지는 여의도의 약 84배 규모인 239㎢로 감정가만 30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번 ISD에 대응하기위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법무부가 합동으로 팀을 꾸려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씨는 2001년 서울 마포에서 주택 및 토지 188㎡를 3억3000만원에 사들였습니다. 2012년 마포구는 그해 서씨 보유 토지가 포함된 대흥2구역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서씨는 이듬해인 201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2016년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 2017년 중앙토지수용위원회 등을 거쳐 제안된 9억5000만원(약 85만달러)가량의 수용가에 대해 “시장가격에 미치지 못한다”며 수령을 거부했죠. 당시 일반 분양된 신규 주택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85㎡ 기준 7억원 안팎이었습니다. 서씨가 퇴거를 거부하자 지역 재건축조합은 소송을 걸었고, 2017년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씨는 이후 한미FTA를 근거로 시장가격으로 보상하지 않는 국내 토지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다며 작년 9월 ISD 의향서를 제출했습니다. 한미 FTA 11조에는 각종 보상에 대해 ‘공정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신속절차를 통해 어느정도 승기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제 중재업계에서도 한미 FTA발효시점(2012년 3월) 당시 서씨 국적이 한국이었고 재개발 결정 이후 201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점에서 한미FTA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또 장기간 주거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취득도 한미FTA상 ‘투자’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서씨측은 2013년이후에도 토지보상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고, 한미 FTA상 투자의 개념이 광범위하다는 점을 근거로 반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재판정부가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면 정부로선 30여 년간 이어져온 공시지가 중심의 토지 보상 제도를 수술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됩니다. 또 패소 가능성이 높은 론스타 ISD 판정 결과(오는 9월이후)에 앞서 작은 ‘승소 소식’(오는 8월)을 국민에게 알린다면 어느 정도 론스타 패소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론스타의 경우 패소 금액이 1조원을 넘느냐 여부가 관건일 것으로 보입니다. (끝) /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