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단독 인터뷰] 리처드 차이 푸본금융그룹 회장 "보험사 M&A 적극 추진"

입력 2019-04-21 18:00
타이베이서 한경 단독 인터뷰
"동양·ABL생명 매물 나오면 관심 가질 것"


[ 서정환/강경민 기자 ]
푸본현대생명의 전신은 1989년 설립된 대신생명이다. 2003년 녹십자를 새 주인으로 맞아 녹십자생명으로 바뀌었다가 2012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돼 현대라이프생명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중심으로 잇단 경영혁신을 단행했지만 5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재무건전성은 악화됐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뒤 누적순손실만 2805억원에 달했다. 손실이 쌓이면서 지난해 6월엔 보험사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인 RBC(지급여력) 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밑도는 147.7%까지 추락했다.

이때 리처드 차이 대만 푸본(富邦)금융그룹 회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2015년부터 현대라이프 경영에 참여했던 푸본금융그룹의 자회사인 푸본생명은 지난해 9월 2336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율을 기존 48.6%에서 62.4%로 높여 최대주주가 됐다. 부동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푸본현대생명은 지난해 64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2011년 이후 7년 만에 흑자를 냈다. 지난해 말 RBC 비율은 297.6%로, 전신인 대신생명 시절을 통틀어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2일 타이베이에 있는 푸본금융그룹 본사 25층 집무실에서 만난 차이 회장은 “한국은 푸본금융그룹의 해외 진출을 위한 핵심 시장 중 하나”라며 “한국에서 추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안방보험 계열사인 동양생명과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이 매물로 나온다면 관심을 갖고 M&A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2016년 푸본금융그룹 회장에 취임한 차이 회장이 해외 언론과 인터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선 푸본금융그룹이 아직까지 생소합니다.

“푸본그룹의 핵심 사업은 금융업입니다. 1961년 푸본손해보험을 설립한 이후 은행, 생명보험, 증권, 자산분야 등에 속속 진출했습니다. 2014년엔 대만 금융회사 최초로 중국 본토에 현지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대만 금융업계에서 10년 연속 주당순이익(EPS)이 가장 높은 회사이기도 합니다. 2005년엔 통신사인 타이완모바일을 인수하는 등 사업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금융, 부동산, 통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습니다.”

▷현대라이프를 인수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대만 생보사 중 동북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건 푸본이 처음입니다. 한국은 대만과 문화가 비슷합니다. 인구가 2300여 만 명인 대만에 비해 인구가 두 배 이상 많기 때문에 시장 잠재력도 큽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협력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한국 보험시장이 어둡다는 전망이 있는데요.

“푸본은 아시아 일류 금융기업이라는 비전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2022년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K-ICS(신지급여력제도)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충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대만은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이 때문에 대만에서 개발한 퇴직연금 및 장기연금보험 상품을 한국 보험시장에서 벤치마킹해 취급할 수 있습니다. 많이 걸을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는 건강증진형 상품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푸본생명이 대만에서 쌓은 풍부한 상품판매 경험을 통해 한국 시장의 수요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로벌 보험시장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선진국은 대부분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줄 수 있는지가 보험시장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자산관리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령화 수요에 맞춰 한국 시장에 맞는 상품을 판매하고 전략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푸본현대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은 무엇입니까.

“단기적으로 세 가지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우선 최근 재개한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 판매) 채널을 확대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현대카드와 협력해 텔레마케팅 판매에도 주력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령화에 따라 잠재력이 풍부한 퇴직연금 시장에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자산 기준으로 푸본현대는 국내에서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선 방카슈랑스와 텔레마케팅, 퇴직연금 판매에 집중해 규모를 키워나갈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보험사 M&A 매물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규모를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이른 시일 내에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까지 확대해 한국 생보업계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업체가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법적인 문제도 있으니까요. 한국과 대만처럼 성숙된 보험시장의 특징은 더딘 성장 속도입니다. 이 때문에 푸본은 그룹 성장과 주주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는 M&A는 항상 적극적으로 검토합니다. 다만 푸본의 사업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질서 있는 투자와 합병’입니다. 우호적 M&A라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입니다.”

▷중국안방보험 자회사인 동양·ABL생명이 매물로 나온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두 회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진지하게 평가해볼 계획입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관심을 두고 검토하겠습니다. 기회만 생긴다면 고려할 의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푸본현대가 7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최소한 1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더욱 확장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해외자산 투자 비중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만은 오래전부터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만 내 투자만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해외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낮습니다. 푸본그룹이 보유한 해외투자 노하우를 접목해 해외 채권과 주식, 부동산 등에 다양하게 투자해 수익을 올릴 예정입니다.”

▷한국은 보험사의 해외투자 비중이 30%로 제한돼 있습니다.

“대만에선 보험사의 해외투자 제한 비중이 50%입니다. 일본과 홍콩은 상한선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향후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만처럼 50%나 아예 50% 이상으로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 금융당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국과 대만 금융당국 간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 금융당국이 푸본을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푸본이 재팬디스플레이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재팬디스플레이 투자 배경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푸본은 금융업에만 편중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차이 가문이 설립한 대만 대표 금융그룹

푸본금융그룹의 모태는 1962년 설립된 캐세이손해보험이다. 차이 가문이 설립한 캐세이손해보험은 1979년 캐세이손보와 푸본손보로 분리됐다. 형인 차이왕린 전 회장이 캐세이손보, 동생인 차이왕 전 회장은 푸본손보를 맡았다. 두 회사는 각각 대만의 1, 2위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차이 가문은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금융재벌로 손꼽힌다. 2014년 작고한 차이왕 전 회장은 리처드 차이 푸본금융그룹 회장(62)의 부친이다.

푸본손보는 1979년 분리 이후 1987년부터 잇따라 은행, 생명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의 분야에 진출했다. 1987년 증권, 1992년 은행, 1993년 생보사를 설립한 데 이어 2001년 푸본금융지주를 세워 대만주식시장에 상장했다. 2014년엔 대만 금융회사 중 최초로 중국에 진출해 푸본은행 차이나를 설립했다.

리처드 차이 회장은 대만국립대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88년 푸본증권을 시작으로 푸본손보 부사장, 푸본생명 사장, 타이완모바일 회장 등을 거친 뒤 2016년부터 푸본금융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타이베이=서정환/강경민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