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뮬러 특검 소식에 "대통령직 끝"…지금은 "게임 오버"[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입력 2019-04-19 08:58
수정 2019-04-19 09: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5월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할 로버트 뮬러 특검 임명 소식에 “내 대통령직도 끝났다. 망했다”며 절망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공개한 448쪽 분량의 뮬러 특검 수사 보고서엔 트럼프 대통령의 대통령직을 끝장 낼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포스터를 트윗에 올리며 “게임 오버”를 선언했다. 반면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뮬러 특검은 지난달 22일 22개월간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 결과를 담은 특검 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틀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4장짜리 요약본을 의회에 제출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에 민주당은 ‘부실 요약’을 지적하며 특검 보고서 전문 공개를 요구해왔다. 법무부가 이날 공개한 보고서는 전체 보고서 중 일부 민감한 내용을 까맣게 칠한 ‘편집본’이다.

요약본과 마찬가지로 편집본에도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당초 뮬러 특검의 초점은 두가지였다. 첫째,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의혹. 둘째,트럼프 대통령의 이에 대한 사법 방해(수사 방해) 의혹이다. 특검은 러시와와 트럼프 캠프의 다양간 접촉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공모’ 증거는 찾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방해 의혹에 대해서도 ‘기소 판단’에 까지 이르진 못했다. 바 장관은 이를 근거로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상 ‘무죄 판단’을 내렸었다.

하지만 특검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방해 의혹에 대해 무죄판단을 내린 것도 아니다. 특히 편집본에는 특검이 검토한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의혹 10개가 나열됐다. 뮬러 특검 해임을 추진한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5월 뮬러 특검 임명 후 한달쯤 뒤인 6월14일 도널드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법무장관 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뮬러 특검이 이해 충돌로 물러나야 한다고 밝히게 하라’고 지시했다. 맥긴 고문은 지시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막아보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노력도 편집본에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당시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하고도 허위보고한 사실이 드러나자, 코미 국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충성맹세’를 요구했다. 이후 플린을 경질한 뒤 코미를 집무실로 다시 불러 ‘플린을 잘랐으니 이제 좀 놔두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그런데도 코미가 수사 의지를 접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를 전격 해임했다.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을 압박해 수사를 막으려던 정황도 구체적으로 포함됐다. 세션스 전 장관이 트럼프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점을 들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제프,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세션스는 이후에도 ‘셀프 제척’ 의지를 고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하루뒤인 지난해 11월7일 세션스를 경질했다. 특검은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대통령의 노력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는 주로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그의 명령을 이행하거나 그의 요구에 응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편집본 공개후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 공방은 가열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게임 오버” 트윗을 올린데 이어 부상 장병 격려 행사에서 참석해 “공모도, 사법 방해도 없었다”며 특검 수사 개시 배경을 조사해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특검수사를 ‘마녀사냥’이라고 공격해왔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트럼프 대통령의 법률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특검 조사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한 승리”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소속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비록 보고서가 불완전한 형태(편집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방해와 다른 위법행위에 관여했다는 충격적인 증거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의회의 책임이라고 했는데, 탄핵을 의미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며 “우리는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파헤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하원 법사위는 오는 5월2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을 출석시켜 추궁하는 한편 편집되지 않은 특검보고서 원본 공개를 거듭 압박할 예정이다. 내들러 위원장은 또 뮬러 특검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빨리 출석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과 슈머 대표는 성명에서 “사법방해 여부와 관련한 바 법무장관의 언급과 특검 보고서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며 “우리가 특검 보고서를 계속 검토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방해를 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특검보고서는 그런 주장을 약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