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대신 '현금 살포'
청년 5만명 줄세운 정부
1만여명 선정해 구직활동 수당
[ 백승현 기자 ]
정부가 취업준비생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3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자가 첫 달에만 5만 명에 육박했다. 지난달 25~31일 7일간 접수한 결과다. 지난달 청년체감실업률이 25.1%에 달하는 등 사상 최악의 청년취업난 속에 정부 지원금을 받겠다는 청년이 대거 몰리면서 선정 결과 발표일인 지난 15일에는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자를 접수한 결과 4만8610명이 신청했으며 이 중 1만1718명을 선정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일정한 자격 조건만 맞으면 ‘선착순’으로 수당이 지급되는 방식이어서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렸다. 고용부는 선정된 청년에게 예비교육을 거쳐 다음달 1일 50만원(클린카드 포인트)을 지급한다.
고용부는 올해 이 사업 예산으로 1582억원(약 8만 명 대상)을 책정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제도는 2017년 서울시가 처음 시행한 청년수당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고용부 외에 전국 14개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용부는 청년 고용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졸업 후 2년 이내 미취업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포퓰리즘적인 청년실업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늘 청년구직활동 지원금 당첨자 발표하는 날인데 하루 종일 사이트가 먹통이네요. 접속에 성공하신 분 있나요?”
정부가 취업준비생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총 3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 결과를 통보한 지난 15일 한 온라인 취업준비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당첨자’ 발표시간으로 예정됐던 이날 오후 6시30분 이후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청년센터 홈페이지는 한동안 접속되지 않았다. 당첨 여부를 확인하려는 청년수당 신청자 등 수만 명이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청년체감실업률은 25.1%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였다. 체감실업률은 단기 아르바이트와 장기 취업준비생도 실업자에 포함한 개념이다. 청년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자라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에서 빚어진 이 촌극을 두고 청년 실업자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유도라는 정공법 대신 일회성 ‘현금수당’을 통한 임기응변식 청년실업 대책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다.
구직활동지원금이 뭐길래…
고용부는 지난달 25~31일 7일간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을 접수한 결과 총 4만8610명이 신청했다고 16일 발표했다. 고용부는 이 가운데 1차 심사 통과자 1만8235명 중 1만1718명에 대해 소정의 교육을 거쳐 다음달 1일 50만원(클린카드 포인트)을 지급할 계획이다.
구직활동지원금은 서울시가 중앙정부의 반대 끝에 2017년 처음 시행한 ‘청년수당’ 제도를 전국화한 것으로 고용부는 지난달 첫 신청을 받았다. 지원대상은 만 18~34세 미취업자 중 △고교·대학(원) 졸업 또는 중퇴 2년 이내고 △중위소득 120%(4인가구 기준 월 553만6243원) 이하 가구원이다. 선정된 청년들에게는 6개월간 월 50만원이 지원된다. 고용부는 올해 1582억원의 예산을 들여 총 8만 명에게 각 300만원을 클린카드 형태로 지급할 계획이다.
70%에 달하는 대학진학률로 고학력 청년비중이 높은 데다 구직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취업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지원 기준을 정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지원대상 선정 방식이다. 고용부는 청년수당을 졸업·중퇴 후 경과 기간이 길수록, 비슷한 지원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없을수록 우선적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기존의 정부 취업지원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나 지방자치단체의 비슷한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면 사실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역으로 졸업한 지 2년이 가까워지고 그동안 어떤 취업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만으로 지원 ‘0순위’가 된다는 얘기다. 졸업 후 구직프로그램 참여 등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달 말 1주일간 신청한 4만8610명 가운데 지자체 취업프로그램 참여 경험자와 졸업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1차 심사대상에도 들지 못한 청년은 2만8700여 명에 달했다. 그동안의 구직 노력이나 졸업한 지 오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청년수당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된 셈이다.
“구직활동계획서 잘 쓸 필요 없어요”
첫 청년수당 신청에 1주일간 약 5만 명이 몰린 것은 사실상 ‘선착순’에 가까운 지원방식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1차 심사를 통과한 청년 중 첫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1만1718명을 제외한 나머지 6500여 명은 이달 중 또는 다음달 신청 때 지원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용부는 예산 제약을 감안해 지원이 더 시급한 청년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중복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졸업 후 경과기간 △유사프로그램 참여 여부 등의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9단계로 나눴다. 졸업 후 12~24개월 경과했으며 유사프로그램 참여 경험이 없으면 1순위, 졸업 후 6~12개월 경과한 경우 2순위가 되는 식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1순위에 해당하는 청년이 다음달에 신청하면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됐다. 16일 한 온라인 취업카페에는 청년수당을 신청한 A씨가 “구직활동계획서를 나름대로 정성 들여 썼는데 탈락했다”고 허탈해하자 “계획서 별 의미 없어요. 이번 달에 1만 명 정도 뽑는데 졸업 1년 이상(1순위)만 1만 명 넘는대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고용부는 이 같은 불합리를 의식해서인지 지원 대상자로부터 월 1회 이상 구직활동보고서를 받고 적극 구직의사가 있는 1만 명에 대해서는 심층상담을 제공할 계획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현금성 수당이 아니라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일자리”라며 “수당을 주더라도 구직 노력과 성과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