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도자는 틀릴 수 없다’는 북한의 고민

입력 2019-04-16 17:31
수정 2019-04-16 17:31


(이미아 정치부 기자) “최고지도자는 전지전능하며 그의 결정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김씨 왕조’ 3대 세습 동안 꾸준히 ‘최고지도자 무오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야 ‘살아있는 신’으로 떠받들어 선전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국과의 2차 정상회담 결렬은 김정은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참석한 회담이 깨져 버렸다”는 사실이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6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온 김정은은 빈 손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되돌아 가야만 했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 공개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연내 3차 정상회담 카드’를 내밀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 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눈에 띈 건 김정은이 ‘대미 협상’ 라인을 문책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줬다는 점이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 통전부도,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외무성도 모두 건재했다. 주스페인 북한 대사를 지낸 김혁철은 외무성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과 김 실장, 이 외무상과 최 부상은 국무위원회 위원으로서 김정은과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특히 김 부위원장은 김정은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최고지도자는 틀릴 수 없다’는 북한 체제 특유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해석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기존 대미 라인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관료들의 건의와 보고를 전달받은 후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린 건 김정은이기 때문에 모든 건 그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선 최고지도자를 향해 ‘당신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하노이 회담’ 결렬은 김정은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와 오류’를 알게 된 최고지도자는 더욱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냉정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더 이상 지난해의 김정은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김정은을 설득하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미 김정은은 ‘자력갱생’이란 단어로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임을 재확인했다.

김정은에겐 ‘평화’란 추상적 단어보다 미국의 제재와 비핵화 위협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무오류의 신화’를 깨지 않으려는 북한으로서도 자신들의 오판을 피하기 위해 우리 정부에 확실한 선택을 원할 것이다. 고달픈 4월이다. (끝)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