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 기득권 보호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나라인가

입력 2019-04-14 17:52
공기업 노조 압박하자 "직무급제 도입 강제않겠다"
청년고용 재원으로 써온 임금피크제도 "보완 검토"
노조요구에 대선공약도 '없던 일'…기업정책과 딴판


정부와 여당이 공공기관들에 직무급제 도입을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막고 인건비를 절감할 사실상의 유일한 장치로 약속한 조치마저 뭉개지게 돼서다. 정부는 공공기관 특성을 반영해 단계적·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논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 정부 시절 어렵사리 도입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기한 데 이어, 직무급제까지 ‘없던 일’로 삼으려는 이유가 기막히다. ‘노조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역시 노조가 반발하자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

민간 기업과 종사자들에게 생산성 하락과 급여 감소라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일률적·강압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조직화되지 않은 저임노동자와 영세상공인, 청년들에게 날벼락을 안긴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고용시장 생태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한 정책들도 강행 배경에 노조 요구가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의 호소와 탄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을 밀어붙이며 경영권을 억압하고,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국민연금을 동원해 주요 기업 경영의사 결정에까지 개입하는 등 기업을 향한 ‘서슬’과 노조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노조 위주로 구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현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시위’와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상당한 지분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민노총은 남북한 관계, 탈(脫)원전 등 정치·사회 이슈에까지 개입하는 등 ‘정권 실세집단’으로서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노조의 안하무인식 행태가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일선 사업장에서 경영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장실에 무단 침입하고 점거와 기물파괴, 폭행을 일삼는 건 ‘관행’이 됐다. 최근에는 국회 시설물을 파손하고 경찰과 취재기자들을 폭행하고도 경찰 수사를 조롱하며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믿는 구석’이 여간 단단하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방약무도할 수는 없다.

그 ‘믿는 구석’이 정부와 여당이라는 사실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민노총의 행태가 자기들이 보기에도 ‘너무했다’ 싶을 때는 정부 여당 고위 간부들 입에서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유권자들이 말이 아닌 행동과 정책으로 노조의 잘못을 근본부터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과 책무를 줬는데도 어떤 조치도 내놓은 게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경영계 및 노조와의 협의에서도 나타났듯 노조의 억지에 휘둘리고 있다. 이러고서도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기업들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노사관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대착오 레코드를 틀어대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과 진영논리가 경제의 근간을 훼절하고 골병을 깊게 하는 일이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