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프로젝트 맹비난
"투명하지 않은 대출 받아
아프리카 17개국 이미 빚더미"
[ 주용석/강동균 기자 ]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사진)가 11일(현지시간) 중국 때문에 세계 일부 국가가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9일 취임한 지 이틀 만에 ‘대중(對中) 매파 본색’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맬패스 총재는 이날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세계 일부가 너무 많은 빚을 떠안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저개발국에 막대한 빚과 질 낮은 사업을 떠안겼다는 지적이다. 그는 취임 전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 시절부터 이런 논리를 펴왔다.
맬패스 총재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춘계회의’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중국으로부터의 자본(대출) 유입을 얼마나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대출이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출이) 투명한 방법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부채는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17개국이 이미 (중국 사업과 관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면서 “새 계약들이 체결되면서 그 숫자는 늘고 있으며 투명하지도 않다”고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했다. 이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해 ‘부채 투명성’과 ‘사업의 질’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맬패스 총재는 중국의 세계은행 융자 차입에도 견제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난해 세계은행 증자 때 중국이 세계은행에서 빌리는 돈을 줄이기로 회원국들이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은행의 저금리 융자를 계속 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이날 맬패스 총재에 이어 연 기자회견에서 개도국들의 높은 부채 수준과 불투명한 부채 규모에 우려를 나타냈다. 라가르드 총재는 “대출자가 다원화되고 파리클럽(선진 채권국 모임) 비회원이 제공한 공공부채가 생기면서 향후 이뤄질 채무 구조조정은 10년 전보다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클럽 비회원으로 개도국에 대한 대출 규모를 통보할 의무가 없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독려하면서 선진국들이 선뜻 지원하지 않는 국가에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채 상환이 힘들어진 국가들이 속출하자 IMF가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빌려준 자금 규모와 조건이 불투명해 IMF가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해 IMF와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협상이 결렬된 데에도 중국에서 빌린 자금의 불투명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미국은 유럽연합(EU), 캐나다와 손잡고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기 위한 ‘연합전선’ 구축에 나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의 해외투자 기구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가 11일 유럽개발금융기구(EDFI), 캐나다 개발금융기관(FinDev)과 업무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12일 보도했다. 이들 기관은 공동의 개발 목표를 추진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국가 주도의 개발 모델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국가 주도의 개발 모델은 중국의 일대일로를 지칭한다.
미국이 ‘반(反)일대일로 연합전선’을 구축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OPIC는 지난해 11월 호주 수출금융보험공사,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과 손잡고 동남아시아 인프라 건설 사업 지원에 합의했다. 미국은 ‘차이나머니’에 기대 경제 개발에 나선 저개발국들이 부채를 갚지 못해 인프라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고, 이런 과정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주용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