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겪을 때마다 더 강해졌죠
올해부터 데이터 금융 시대 열려
20년 만에 찾아온 기회 꼭 잡겠다
[ 배태웅 기자 ]
급히 현금이 필요할 때 찾는 편의점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공과금을 낼 때 이용하는 가상계좌.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금융 서비스들이다. 이 서비스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눈에 띈다. ‘핀테크(금융기술) 장인(匠人)’ 석창규 회장(56)이 이끄는 웹케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이다. 석 회장은 최고경영자(CEO)인 동시에 개발팀장이다. 프로그램 개발을 진두지휘해 ‘국내 최초’ 타이틀을 얻은 금융 서비스만 10개가 넘는다. 업계에서 금융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면 석 회장에게 물어야 한다는 얘기가 도는 이유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일식집 어도에서 그를 만났다. 석 회장은 “쉬고 싶을 때마다 들르는 단골집”이라며 방으로 이끌었다. 그는 “지난 1월 회사 상장을 마치고 이제 막 한숨 돌린 참”이라고 했다. 이곳을 택한 이유를 묻자 “편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싶어서”란 답이 돌아왔다.
떡볶이 팔던 소년가장
참치, 광어, 도미, 농어 등으로 구성된 회 세트와 삶은 게, 꼬막 등이 상을 가득 메웠다. 큼직하게 썬 광어 회 한 점과 무순을 입안에 넣자 감칠맛이 혀를 감쌌다. 석 회장은 “회에 소주가 없으면 안 된다”며 잔을 권했다. 건배를 마친 뒤 “싱싱한 해물이 꼭 고향인 부산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며 어렸을 적 얘기를 시작했다.
석 회장은 1962년 부산에서 3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조그마한 문구 제조공장을 하던 아버지 때문인지 어떻게 물건을 만들고, 돈을 버는지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그의 삶은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180도 바뀌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의 일이었다. 교사일을 하던 누나도 있었지만 기울어진 가계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석 회장의 선택은 창업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집 한편을 가게로 개조해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처음 6개월은 장사가 참 잘됐어요. 그때 돈으로 2000만원 정도를 벌었으니까요. 하지만 반짝 인기였죠. 갈수록 손님이 줄었고 결국 가게 문을 닫아야 했어요. 주방기기들을 헐값에 넘기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첫 사업이 실패한 뒤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과외부터 레스토랑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 그는 “집안 장남이란 무게감이 컸다”며 “돈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업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털어놨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까스로 잡은 직장은 부산 동남은행이었다. 그는 거기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당시 동남은행은 전자금융의 선두주자로 꼽히던 곳이었다. 온라인 은행업무 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교통카드의 전신인 하나로카드를 내놓은 것도 동남은행이었다. 그가 동남은행과의 인연을 ‘행운’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은행에서 일했던 1990년대만 해도 봉투에 현금을 담아 월급으로 지급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돈 찾으러 온 회사 경리들로 북적였죠. 그 시절에도 동남은행은 온라인으로 은행업무를 처리했어요. 남들보다 한발 빨리 움직이는 회사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술에 눈을 뜨게 됐죠.”
은행 생활의 변곡점은 외환위기였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동남은행이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에 팔리면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고민 끝에 사표를 던지고 창업전선으로 되돌아왔다. 퇴직금 1억원과 부산대 창업지원센터의 23㎡짜리 사무실이 전부인 회사로 동남은행 시절 동료 8명을 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웹케시의 전신인 피플앤커뮤니티다.
석 회장은 은행 손님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점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을 회사의 목표로 삼았다. 궁리 끝에 나온 첫 작품은 편의점 ATM이었다. 당시 ATM 가격은 대당 수천만원. 막 문을 연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엔 벅찬 규모였다. 동남은행 시절 동료들의 투자금을 긁어모아 가까스로 사업자금을 마련했고 2000년 들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출발은 좋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위기가 찾아왔다. 비즈니스 모델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대기업들이 웹케시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고 물량 공세에 나서자 버틸 방법이 없었다. ATM과 함께 내놓은 가상계좌 서비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금 사정이 나빠졌고 두 아이를 돌보던 아내까지 취업전선에 내몰렸다.
“특허 소송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어요. 아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차기작을 개발했어요.”
2004년 기업용 자금관리(CMS), 공공기관용 재정관리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웹케시는 한숨을 돌렸다. 은행 온라인 뱅킹 시스템통합(SI) 사업 등이 추가되면서 은행권에서는 알아주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SI 사업 과감히 정리
회가 바닥을 보이자 이번엔 우럭구이와 가자미식해, 충무김밥이 차례로 나왔다. 반쯤 말렸다 구운 우럭은 씹을 때 쫄깃함이 그만이었다. 석 회장은 “이 집은 가자미식해도 별미”라며 권했다. 새콤하면서 밥을 부르는 맛이 충무김밥과 궁합이 잘 맞았다.
술잔이 돌면서 대화 주제는 ‘초심’으로 옮겨갔다. 2012년 석 회장은 대표이사 업무를 내려놓고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사업으로 지친 심신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자리를 비운 사이 사업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200억원을 들인 업무관리 플랫폼 앱(응용프로그램)인 비즈플레이가 말썽이었다. 50종의 서비스가 중구난방으로 개발되면서 이용자들이 등을 돌렸다. 실적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결국 석 회장이 직접 나섰다. 창업 초기처럼 개발코드를 직접 뒤졌다. 개발한 서비스 중 법인카드 관리 기능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소통 방식도 ‘팀장 스타일’로 바꿨다. 모바일 메신저로 개발진과 1 대 1로 소통하면서 세세한 부분들을 챙겼다.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개발자들이 하나씩 떠났어요. 경영진과 개발자들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죠. 저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개발자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개발팀과 일일이 소주잔을 나누면서 회사의 문제점이 뭔지 들었습니다.”
2017년 석 회장은 핀테크 솔루션 사업에 집중하려고 18년 동안 해오던 은행권 SI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매출에 매달리기보다 독창적인 사업에 전념하자는 생각에서였다. 920억원에 달하던 웹케시 매출이 지난해 770억원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
“드라마는 좋은 대사 하나만으로도 대박이 나죠. IT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노동 집약적인 SI 사업으로는 드라마 ‘도깨비’ 같은 명품이 안 나옵니다. 매출이 줄어도 우리만의 명품이 있으면 그게 더 나아요.”
캄보디아서 IT 인재 직접 길러
식사 메뉴로 알밥과 도다리쑥국이 나왔다. 도다리쑥국은 이 집의 봄철 한정 메뉴로 도다리에 향긋한 쑥을 넣어 담백한 맛을 낸다. 석 회장은 도다리쑥국에 밥을 한 술 말아먹더니 캄보디아의 IT 인재 육성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석 회장과 캄보디아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찾은 캄보디아의 열악한 환경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과 ‘똑똑한 캄보디아 친구들이 기회가 없어 농사나 짓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석 회장은 시장보다 인재에 집중했다. 핵심 인재를 일찍 발굴하면 회사에 보탬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웹케시가 2013년 프놈펜에 ‘코리아 소프트웨어 HRD(인재개발)센터’를 세우게 된 배경이다.
초기 반응은 신통찮았다. 첫 기수엔 100여 명만 응시했다. 정원(90명)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숫자였다. 석 회장을 비롯한 한국 기술진은 실망하지 않고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지도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 10여 명이 매일 8시간씩 꼬박 9개월을 교육했다. 소문이 나면서 교육과정 지원자들이 늘어났다. 2기 경쟁률이 5 대 1로 높아졌고 6기쯤 되니 10 대 1은 기본이 됐다.
왜 굳이 먼 캄보디아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후식으로 나온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개발자들의 잦은 이직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일 좀 한다 싶은 개발자는 대기업이 번개처럼 낚아챕니다. 캄보디아에서 가르친 학생들은 우리가 직접 키웠으니 다른 기업으로 갈 염려가 없죠.”
최근 석 회장이 몸담고 있는 전자금융 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는 올해를 “20년 만에 한 번 오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20년 전 인터넷 금융이 퍼진 것처럼 ‘데이터 금융’이 다시 산업을 바꿀 것이란 논리였다. 그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할 시기”라며 “내년엔 웹케시 계열사들을 추가로 상장해 핀테크 기업 집단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웹케시는…
웹케시는 금융에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접목한 핀테크(금융기술) 솔루션으로 유명한 업체다. 1999년 부산대 창업지원센터에 모인 동남은행 전자금융센터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회사(피플앤커뮤니티)를 차렸다. 사명이 웹케시로 바뀐 것은 2001년이다. ‘국내 최초’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기업용 가상계좌 등이 이 회사 작품이다.
‘캐시카우’는 공공기관·대기업용 자금관리 서비스인 ‘인하우스뱅크’와 중소기업용 자금관리 서비스인 ‘브랜치’다. 인하우스뱅크를 쓰는 기업과 공공기관은 모두 425개에 달한다. 브랜치를 쓰는 고객사는 더 많다. 4900개 중소기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엔 법인카드 지출관리, 중소기업용 경리업무 시스템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으며 계열사인 비즈플레이, 쿠콘 등의 기업공개도 추진 중이다.
■약력
△1962년 출생
△1988년 부산대 전산통계학과 졸업
△1988~1999년 동남은행 전자금융센터 컨설팅·프로젝트 매니저
△1999~2001년 피플앤커뮤니티 대표
△ 2001~2016년 웹케시 대표
△ 2013년 2월~ 한국 소프트웨어산업 협회 부회장
△ 2014년 3월~ 웹케시벡터 대표
△ 2015~2017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이사장
△ 2016년 1월~ 비즈플레이 대표
■석창규 회장의 단골집 어도
계절마다 제철 횟감…봄철엔 도다리쑥국 인기
‘어도’는 서울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식 전문점이다. 주방장이 엄선한 자연산 횟감으로 만든 정식 세트가 간판 메뉴다. 계절에 맞는 제철 생선과 해물을 내놓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상차림이 조금씩 달라진다. 전복내장죽을 시작으로 회와 게, 꼬막 등이 먼저 나온다. 그다음은 생선구이와 탕 요리다. 가격은 구성에 따라 8만~13만원.
봄철엔 향긋한 쑥과 도다리를 끓여낸 도다리쑥국이 인기다. 여름에는 민어, 가을에는 농어와 전어가 나온다. 겨울이 되면 복요리를 찾는 손님이 많아진다. 상차림 중간에 나오는 가자미식해와 충무김밥, 전복내장무침, 낙지볶음도 이 집의 별미로 꼽힌다.
횟감 사정에 따라 요리 구성이 달라지므로 미리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연어와 도미구이 덮밥 등은 일품요리로 판다. 정식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3만~5만원대 단품 요리를 고르면 된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