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울진서 '각석 명문' 30여 개 확인
6세기 간지·신라 관직 등…대부분이 楷書
[ 서화동 기자 ] 1200여 년 전인 신라 원성왕 14년(798년)에 화랑과 승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천연기념물 제155호인 울진 성류굴에서 발견됐다. 국내 동굴 내부에서 명문(銘文)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울진군 관계자들이 지난달 21일 성류굴 종합정비계획을 세우기 위해 동굴을 조사하던 중 입구에서 230여m 떨어진 지점에서 각석(刻石) 명문 30여 개를 확인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불영사 계곡 부근에 있는 성류굴은 전체 길이가 약 800m인 석회암 동굴이다. 글씨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의 석주와 석순, 암벽에 음각 형태로 새겼다. 글자 크기는 대부분 정자체인 해서(楷書)이고 일부가 약간 흘려서 쓴 행서(行書)인 것으로 조사됐다.
명문 중 하나는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으로, 정원 14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이 다녀갔다는 뜻이다. 정원(貞元)은 중국 당나라 황제 덕종(재위 779~805)이 785년부터 사용한 연호다. 이 명문 주변엔 화랑 이름으로 추정되는 ‘공랑(共郞)’ ‘임랑(林郞)’과 소를 뜻하는 글자 ‘우(牛)’도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류굴이 신라시대 화랑이나 승려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로, 수련 장소로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며 동물 이름에 대해서는 “화랑들이 동굴에서 의례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신유년(辛酉年)’ ‘경진년(庚辰年)’ 같은 간지, 통일신라시대 관직 명칭인 ‘병부사(兵府史)’, 조선시대 율진현령을 지낸 ‘이복연(李復淵)’이라는 글자도 확인됐다. 524년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 해서와 동일한 서체도 있었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표현한 다섯 오(五)가 3개 발견됐고, 장천(長川)이라는 글자도 나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류굴 명문은 신라시대 이후 정치, 사회사와 화랑제도 연구에 도움이 될 사료로 보인다”며 “각석 명문을 실측하고 기록화 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연차별 정밀 학술조사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