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무인매장·로켓배송·서빙로봇…위기의 소매점 되살릴까

입력 2019-04-11 17:45
리테일의 미래

황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
308쪽 / 1만6800원



[ 윤정현 기자 ] 1999년 미국 소매(리테일)업계 전체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3조달러(약 3421조원)를 넘었다. 소비 시장은 매년 몸집을 불렸다. 언제까지나 성장만 할 것 같던 소매 시장에 이상 조짐이 감지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2009년 가전판매업계에서 베스트바이와 어깨를 견주던 서킷시티가 파산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 여파라는 핑곗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소매 시장 전체 매출은 이후에도 완만하게 증가세를 이어갔다. 애써 무시한 작은 균열은 10년 후 거대한 붕괴로 모습을 드러냈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유아용품 회사 토이저러스는 2017년 파산을 신청했다. 125년 전통을 가진 중저가 백화점 체인 시어스는 같은 해 381개 매장을 줄였고 지난해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2017년 한 해 미국에서 8053개 매장이 철수했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소매업의 위기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영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과 한국에서도 문 닫는 매장이 급속히 늘었다.

몰락의 한편에선 무인 매장, 로켓 배송, 인공지능(AI) 주문, 로봇 서빙 등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리테일의 미래》는 현시점을 소매유통 시장의 ‘대전환기’라고 진단한다. 책은 소매산업 현장에서 무슨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인 황지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마케팅 전공 교수는 국내 의류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물길이 바뀌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브랜드 경쟁력과 소비자 의사결정권이 힘을 잃어가고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 대한 접근 방식도 바뀌고 있다”며 “유통과 소비를 둘러싼 총체적인 통찰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기술 혁신으로 바뀌는 환경과 취향이 다른 세대의 등장은 브랜드 영향력 약화에 따른 기업들의 고민과 연결된다. 저자는 앞으로의 쇼핑은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을 넘어 ‘음성’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올해 중국엔 8550만 가구가, 미국에선 7420만 가구가 스마트 스피커를 보유할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 거실과 방에 각각 TV를 두고 봤듯 앞으로는 각 가정에서 거실과 주방, 방마다 스마트 스피커를 두고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쇼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저자는 보이스 쇼핑의 대중화가 쇼핑할 때 의사결정 단계를 바꿔놓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존엔 필요를 인지한 뒤 정보 탐색과 제품 비교 후 구입이 이뤄졌다면 보이스 쇼핑은 필요 인지 후 바로 구입 결정 단계로 들어간다. 브랜드별로 선호도가 없는 상품군이라면 “건조한 두피에 맞는 샴푸 알려줘”라는 식으로 AI로부터 추천받을 수 있다. 저자는 “보이스 쇼핑은 기존 브랜드에 대한 인식과 역할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상품을 추천하는 쇼핑 플랫폼 의존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아마존도 ‘아마존의 선택’ 제품을 구성해 놓고 있다. 여기에 자체상품(PB)을 포함해 어떤 브랜드를 넣을지 정하는 것은 아마존의 권한이다. 아마존은 그것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다.

밀레니얼 후속 세대로, 통상 1997년 이후 태어난 ‘Z세대’의 부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바버라 칸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는 2020년엔 밀레니얼 세대가 전체 소매 매출의 30%, Z세대가 40%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어리지만 가정 내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소비 잠재력은 더 높다는 평가다. ‘유튜브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기술 의존도가 높고 사회적 정의를 중시하는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Z세대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이전 세대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에 주목한다. 10대에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현실적인 경제 관념이 자리잡았고 편의성과 더불어 재미를 중시하고 정직한 브랜드를 선호한다.

저자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다룬 3장에서 앞으로 유효할 브랜딩 전략과 더불어 리테일 리더십의 핵심 요건들을 꼽아 ‘대전환기’의 대응에 관한 힌트를 제공한다. 다만 핵심 내용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짧아 아쉬울 법하다. 살아있는 사례로 가득한 ‘리테일 현장 보고서’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뽑아낼 수 있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