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의 길을 가다
[ 은정진 기자 ]
부산에서 배로 1시간 거리인 쓰시마(대마도)는 조선통신사(그림)들이 처음 밟은 일본 땅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조선통신사는 에도(현 도쿄)까지 총 2000㎞ 거리를 반년에서 길게는 1년에 걸쳐 다녀왔다. 당시 조·일 외교에서 ‘길’은 조선의 고위 관료가 일본 권력자를 만나는 중요한 외교 창구였다. 서인범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쓴 《통신사의 길을 가다》는 400여 년 전 통신사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조선시대 대일외교의 본질을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40일 동안 부산에서 출발해 쓰시마 오사카 교토를 지나 에도, 일왕이 사는 곳인 닛코(日光)를 방문하기까지 통신사가 지나간 주요 경유지 58곳을 답사했다.
당시 조선이 조공을 바치고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명나라와 청나라에 파견한 연행사와 달리 통신사 파견은 전적으로 일본의 요구로 시작됐다. ‘통신사(通信使)’는 ‘서로 믿음으로 통한다’는 의미다. 당시 일본 막부 최고권력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통신사에게 “난 관동에 있어 임진년 일을 알지 못한다. 지금은 히데요시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진실로 난 조선과 원한이 없다. 화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이후 틀어진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문물을 교류하는 게 일본 국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도쿠가와의 국제 정세에 대한 판단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597년 정유재란 이후 10년 만인 1607년 첫 파견 이후 200여 년 동안 통신사는 총 열두 차례 일본을 다녀왔다. 책은 총 6부로 나눠 통신사가 다녀간 길을 순서대로 치밀하게 서술한다. 지역마다 저자가 마주친 통신사 관련 자료와 사진들을 보여주고 수많은 일본인과의 대화를 통해 통신사의 모습을 복원한다. 1부에선 부산에서 하카타(현 후쿠오카)까지 소개하며 조선과의 관계 회복에 앞장섰던 쓰시마번주를, 2부에선 혼슈 끝자락에 있는 시모노세키에서 고베(효고)까지를 다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도요쿠니 신사 옆에 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잘린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묻은 이총을 소개하는 3부와 쇼군에게 국서를 전달하는 통신사들의 긴장감과 각종 사건을 서술하는 5부도 눈길을 끈다.
통신사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왜란과 재란 당시 잡혀간 피로인, 즉 포로들을 다시 데려오는 일이었다. 조선의 요구에 일본이 사과한 것은 아니지만 성의는 보였다. 군대가 저지른 일이기에 오늘날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갈등과도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에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문제 삼지 말라고 하는 지금 일본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400년 전보다 후퇴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일 간 정치적 교류는 물론 경제적 교류까지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다. 책은 과거 조선과 일본이 두 번의 전란 이후 통신사를 통해 어떻게 관계를 회복했는지 답을 알려준다. 저자는 “차가워진 한·일 간 외교문제를 푸는 방법을 통신사의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인범 지음, 한길사, 808쪽, 2만8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