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Study 복합상업시설 (3)
자연친화적인 녹지, 걷고 싶은 아담한 거리와 테라스 등. 콜로라도 덴버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13㎞ 떨어져 있는 레이크우드시티의 메인 스트리트 벨마는 녹색마을(Green Village) 콘셉트의 쇼핑센터다. 미국 리테일 시장을 대변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쇼핑센터들과 다르게 22개의 아담한 블록으로 이뤄진 전원주택 단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벨마는 다양한 비즈니스 페어, 시 정부 차원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도시의 아이콘이다. 이런 벨마도 과거에는 흥망성쇠를 겪은 1세대 복합쇼핑센터였다.
한국이 아직 전후 피해복구를 위해 매진하던 1960년대, 콜로라도에는 거대한 주차면적을 자랑하는 초대형 쇼핑센터가 생겨나고 있었다. 당시 콜로라도 리테일 시장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게리 본 프레릭은 텍사스에서 소박하게 건설사업을 운영하던 평범한 사장이었다. 텍사스의 건설사업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던 차에 그는 시야를 넓혀 콜로라도 지역에서 건설사업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콜로라도 외곽지역인 레이크우드시티에 1920년대부터 콜로라도 우체국 비즈니스를 운영하던 본필스가 소유의 13만 평 별장 부지가 비어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건설사업에 대한 안목을 확장해 디벨로퍼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부동산산업 규모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던 시대에 시골 도시인 레이크우드시티에는 아직 제대로 된 쇼핑센터가 없다는 점에서 ‘대박’ 조짐이 보였다.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원스톱 데스티네이션’의 개념을 도입한 프레릭은 ‘모든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마을’이란 콘셉트로 ‘빌라 이탈리아(Villa Italia)’란 이름을 붙여 쇼핑센터를 개발했다. 연면적 2만 평으로 거대하게 마련된 빌라 이탈리아는 몰 자체 규모보다 더 큰 주차장이 마련돼 접근성이 좋은 쇼핑몰이란 평가를 받았다. 실내 플로어는 이탈리아 로마광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쇼핑센터 임대공간에 브랜드를 채우는 테넌팅 역시 현대적인 쇼핑센터의 모습과 일치했다. 대형 백화점인 몽고메리 워드와 조스릴, JC 페니, 대형 시네마를 앵커 테넌트로 도입해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966년 쇼핑센터가 오픈하자 덴버시티를 비롯한 콜로라도주 전체가 열광했다. 인구 35만 명의 소도시였던 레이크우드시티는 빌라 이탈리아 그랜드오프닝이 있던 주말 3일 동안 75만 명의 방문객이 운집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빌라 이탈리아를 구성하고 있는 앵커는 당대 최고였다. 규모 면에서도 각각 3000평 이상의 대형 면적을 사용하는 식으로 유치됐다. 쇼핑센터 면적의 약 58%가 이들 앵커시설을 위한 공간이었다. 패션과 식음료(F&B) 모두 첨단을 달렸다. 하지만 빌라 이탈리아는 영광을 짧게 누리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짧은 영광 뒤 쇠락의 길로
빌라 이탈리아의 개발 공식은 쉽게 복제가 가능했다. 주변에는 비슷한 상품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스타트라인을 처음으로 끊었고, 오픈과 동시에 타이틀을 빼앗은 주인공은 신데렐라 시티 몰이었다. 개발자는 공교롭게도 빌라 이탈리아를 만든 본 프레릭이었다. 레이크우드시티에서 성공을 맛본 그는 빌라 이탈리아 오픈 2년 뒤 동남쪽으로 15㎞ 떨어진 공원 부지를 매입해 빌라 이탈리아보다 두 배 가까이 큰 쇼핑센터를 개발했다. 대형 쇼핑센터가 잇따라 개관하면서 빌라 이탈리아는 2001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장기간 땅을 소유하고 있던 본필스 스텐톤 파운데이션은 레이크우드시티에 소유권을 넘겨주게 됐고, 신생 부동산 전문업체인 ‘컨티넘 파트너스’가 이 휑한 공간을 되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컨티넘 파트너스는 ‘대형 앵커시설 유치전의 승리=쇼핑몰의 개발 성공’으로 인식되던 전통적인 개발공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존 쇼핑센터 형태로는 경쟁우위를 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한 컨티넘 파트너스는 복제하기 어려운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결론은 건물을 해체하고 작은 동네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변화를 위해 그들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첫 번째 칼을 댄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를 여러 개 블록으로 쪼개고, 길을 내어 도로로 만든 것이다. ‘기부채납’ 형식으로 과거 영업면적이던 공간을 시 소유의 공공도로로 돌린 것인데, 이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5%에 달해 효율만을 외치던 개발 방식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조치였다. 거대한 건물 안에 모든 가게를 몽땅 몰아넣는 쇼핑센터의 전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벨마의 탄생 순간이다.
좋은 동네에 앵커는 알아서 붙는다고 믿었다. 마을의 핵을 소수의 대형 앵커에 내주기보다는 다양한 소형 점포로 구성했다. 콘텐츠도 괄목할 만한 기획이 더해졌다. 거리의 핵심 공간은 광장으로 비워둬 여름에는 공연장, 겨울철에는 아이스링크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했다. 과거 변두리에 있던 시네마는 광장 건너편으로 옮겨 배치하고, 시네마를 둘러싼 가게들은 아트갤러리와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조닝으로 구성했다. 주차장과 앵커시설은 자연스럽게 동네 끝자락에 배치했는데, 방문객의 편리성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임대차 실행 프로세스다. 벨마는 마을 중심부 하이 스트리트 임대율이 70%를 달성할 때까지 앵커시설의 임대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마을 콘셉트가 확실해져 앵커들이 들어오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렸다. 앵커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상권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쇼핑센터를 쇼핑 디스트릭트로
벨마는 쇼핑 디스트릭트를 명소로 만드는 데 투자·회수 관점보다는 기획 관점으로,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접근했다. 우선 프로젝트의 개발비 투입 과정에서 풍부한 세제 혜택, 지원금,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클린에너지와 리사이클링이 전국적 화두이던 시절, 최초의 ‘녹색개발(green development)’이란 기치로 전체 건축에 소요되는 85%의 자재를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남은 것으로 재활용했다. 단지 곳곳에 풍력발전기와 8370장의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해 매년 230만㎿의 전력을 공급하면서 시 정부로부터 인프라 구축 투자비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단지 내에 임대형 주택도 함께 개발해 추가 수입을 거뒀다.
레이크우드시티는 과거 콜로라도주에 걸쳐 있는 로키산맥과 국민맥주 쿠어스 외에는 내세울 것 없는 지역이었다. 구심점이 없던 도시에는 벨마라는 중심상권이 생겼고, 콜로라도주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아이콘이 됐다. 벨마 프로젝트의 대성공으로 레이크우드시티는 도시 차원에서 종합부동산 개발이라는 시(市)정부의 서비스 라인이 생겼고, 현재는 메인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가치 상승도 눈여겨볼 만하다. 벨마의 부동산 상품들은 서부 덴버지역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2001년 개발 초기부터 2013년까지의 연평균 거래가치 상승률은 36%에 달한다. 개발 초기부터 8년 동안 700%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벨마의 리테일 부문은 2015년 9월 스타우드리테일파트너스에 매각됐다. 상권의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이 투자자산으로서도 인정받게 된 것이다. 과거 규모의 경쟁으로 빌라 이탈리아를 단숨에 추월했던, 현재는 망해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신데렐라 시티 몰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박지원 <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리테일그룹 기획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