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해외에서도 악명 떨치는 금감원

입력 2019-04-10 17:56
외국 운용사 중징계 고집하다 결국 실패
세계시장서 '韓 금감원은 고집불통' 인식

송종현 증권부 차장


[ 송종현 기자 ] 요즘 금융감독원을 바라보는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불시에 날아드는 금감원의 ‘밀어붙이기’식 징계안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최근 금감원과 공방을 벌여본 업계 관계자들은 “논란의 소지가 큰 사안에 대해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징계 수위를 놓고 싸움이 수개월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니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경쟁력은 약화될 대로 약화되기 일쑤다. 결과가 금감원안대로 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실트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행어음으로 모은 자금을 불법대출했다는 혐의로 한국투자증권에 들이민 영업정지 1개월 등의 중징계안은 최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경징계로 낮아졌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에는 영업정지 1개월 등 중징계를 통보했지만 지난 3월 경징계에 해당하는 기관주의로 수위가 낮아졌다. 이 건은 한국에선 주목을 덜 받았지만, 해외에선 금감원이 악명을 떨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설명이다.

금감원은 프랭클린템플턴 뱅크론 펀드가 편입한 채권 발행 기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손실이 난 과정을 문제삼았다. 이 운용사가 편입 자산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늦게 인지했고, 손실 가능성을 알면서도 뒤늦게 공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유로 지난해 8월 한국지사 현장검사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머테이오의 프랭클린템플턴 본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프랭클린템플턴이 한국에서 운용하는 자산(AUM) 규모는 2조7766억원(작년 말 기준)으로, 글로벌 전체 AUM(작년 11월 말 기준 약 780조원)의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특정 국가에서 징계를 받으면 그 사실을 세계적 연기금의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 참여할 때 적시해야 한다. 한국 시장은 작지만 글로벌 영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본사 차원에서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미국 본사 인력 수십 명이 서울로 날아와 여의도에서 숙박하며 금감원을 설득하는 데 ‘올인’했다. 본사 측은 펀드에 편입한 해당 기업이 파산보호에 들어간 뒤에도 6개월여 동안 원리금 지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져 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보유자산에 변동이 생기자마자 공시한 만큼 늑장공시라고 볼 수 없다고도 항변했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프랭클린템플턴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결국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은 “프랭클린템플턴이 고집불통 한국 금감원에 학을 뗐다는 사실을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영업 중인 글로벌 운용사들이 다 알고 있다”며 “금감원의 한 부원장이 무리한 징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이후 바클레이즈, 골드만삭스 등이 서울지점을 폐쇄하는 등 외국 금융사의 탈(脫)한국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도 이번 건의 여파로 진행 중인 삼성액티브자산운용과의 합작법인 설립이 물건너가면 사실상 한국을 떠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국 금융사들의 이런 움직임을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의 탓”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허브라는 거창한 구호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양질의 일자리마저 걷어차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요즘의 분위기다.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