住테크 돋보기
주거시설로 기본 수요 확보
문화 등 집객시설로 新수요
상업시설 경쟁력도 높아져
패션에도 유행이 있듯 아파트도 트렌드가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좋은 아파트란 햇빛 잘 드는 남향, 지하철 역세권, 10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였다. 평면은 24·32·42평형이 일반적이었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과 주방이 반듯하게 배치됐으며 방 수는 면적에 따라 2·3·4개가 비교적 엄격히 구분됐다. 아파트 브랜드도 단순했다. 삼성, 현대 등 건설회사 이름이 곧 아파트 이름이었다.
2000년대 이후 아파트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각종 부동산 규제가 완화되고 건축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냥갑 모양의 판상형 대신 탑상형이, 15층이 최고층이었던 아파트에서 50층을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등장했다. 거실 중심에서 전면 발코니 방향으로 배치된 방과 거실 수에 따라 3베이, 4베이로 불리며 거실과 침실이 일렬로 배치되는 새로운 평면이 인기를 끌었다.
초고층 주상복합이 등장한 것도 2000년대 초부터다. 주상복합 아파트는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복합된 건물이다. 주상복합 아파트는 1960년대부터 있었다. 도심권에 들어선 세운상가, 낙원상가, 진양상가 등이 상가와 아파트가 결합된 대표적 건물이다. 1990년대에도 작은 부지에 아파트를 지을 때 상업시설을 1~2층에 배치하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저층부 상가에서 올라오는 음식물 냄새와 소음, 상가 이용자들과 거주자 동선이 겹치면서 생기는 불편함 때문에 주상복합 아파트는 선호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등장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건축 기술 발달로 30층 이상 초고층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대부분 서울 강남권, 여의도 등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고급화·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입주자 특성에 따라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초고층의 강점인 한강, 도심 야경이 우수한 조망권과 부유층을 위한 시큐리티, 주거와 상업동선 분리 및 고급화를 통해 생활의 편리함을 내세웠다.
주상복합 개념을 바꾼 초기 일등공신은 단연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다. 2002년 10월 입주한 타워팰리스는 총 66층에 아파트 1129가구, 업무시설인 오피스텔 168실, 판매시설인 상가동으로 구성되고, 부대시설로는 독서실, 연회장, 게스트룸, 놀이방, 수영장 등을 갖췄다. 입주 17년이 지난 2018년에도 전용면적 244.66㎡가 최고 50억원에 거래될 정도로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다. 타워팰리스 등장 이후 서울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 등 땅값 비싼 상업지역에 초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생겨났다.
2010년 이후에는 주거복합단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까지 주상복합이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의 결합, 즉 아파트와 오피스텔, 상가 수준의 조합이었다면 주거복합단지는 주거와 상업은 물론 업무·문화·교육시설 등이 연계 개발되는 단지다. 상업이나 문화시설도 단지 내 상가 수준을 벗어나 적극적인 집객시설로 바뀌고 있다. 대표 주자는 2012년 입주한 서울 서교동의 메세나폴리스다. 메세나폴리스는 아파트 617가구, 오피스, 상업시설인 메세나폴리스몰(mall)로 구성돼 있다. 메세나폴리스몰에는 각종 음식점 및 패션브랜드, 대형마트가 있고 문화 및 집회시설인 영화관과 공연장을 갖춰 말 그대로 주거와 문화, 상업시설이 복합된 주거복합단지다. 서울 문정동 송파파크하비오푸르지오는 아파트, 오피스텔, 상업시설과 함께 숙박시설인 호텔이 있다. 서울 천호동 래미안강동팰리스에는 아파트 999가구, 상업시설 외 이스트센트럴타워라는 오피스가 10만423㎡ 포함돼 있다. 수도권에서는 주거·상업·업무·숙박시설 등이 복합된 경기 성남시 판교택지개발지구의 알파돔시티가 대표적이다.
주거복합단지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를 지을 만한 주거용지는 부족하고, 대규모 상업시설만 공급하기에는 분양 리스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주거시설을 지어 기본 수요를 확보하고 공공·문화시설 등 집객시설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상업시설 경쟁력도 높아진다. 여기에 바쁜 현대인도 슬리퍼만 신고 쇼핑과 여가, 문화시설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주거복합단지에 대한 선호도 높아지고 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혜현 < 알투코리아투자자문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