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승 교수 '1919' 출간
[ 윤정현 기자 ] “1919년은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빛난 시기였습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일제에 항거했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임시정부가 태어났으니까요.”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사진)는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919》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아 안타까웠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박 교수는 지난 30년간 해온 독립운동 연구를 바탕으로 시발점이 된 1919년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1919》에 실증적으로 풀어냈다.
일제의 무단통치부터 일본과 중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과 민족대표 33인이 모인 과정, 전국에 울려퍼진 3월의 함성과 임시정부 수립에 따른 대한민국의 탄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박 교수는 당시 사건들의 뒤에 숨은 의미를 짚을 뿐만 아니라 막연하게 잘못 알고 있던 정보들에 대해 사료를 들어 바로잡았다.
책은 현재 국가지정기록물로 등록돼 있는 이른바 ‘신문관판’ 독립선언서가 1919년 당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는 근거부터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집필자가 누구인지,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30년 만에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수정된 이유까지, ‘사실’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올해 쏟아져 나온 많은 3·1운동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박 교수는 “1차적으로 당시의 공식 기록인 신문을 면밀히 살폈고 판결문과 해방 이후의 회고록들도 주요 자료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고쳐 부르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박 교수는 “국내 군주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대상으로 싸운 것”이라며 “혁명이라는 개념을 폭넓게 사용한다 해도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혁명은 높고 운동은 낮은 수준의 것이 아니라 다른 성격”이라며 “‘혁명’이라는 용어에 연연하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