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육아 도우미 비용만 月 180만원…이게 '남는 장사'인지

입력 2019-04-08 18:04
수정 2019-04-09 08:48
'신입사원'으로 재취업한 경단녀들의 고군분투

워킹맘으로 돌아왔지만
40代에 다시 '미생' 된 기분


[ 조아란 기자 ] 지방 공공기관에 다니는 한모 사원(37)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전사를 통틀어 ‘막내급’이다. 그는 취업 전선에 늦게 뛰어든 ‘늦깎이 취준생’은 아니다. 한 사원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입사 동기 중에서 진급이 가장 빠른 ‘대리님’이었다. 하지만 결혼 뒤 출산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과장을 달고 승승장구하는 예전 회사 동기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한 사원이 올해 초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유다.

육아수당 지급, 사내 어린이집 설치 등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출산과 자녀 양육 등을 이유로 일터를 떠나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들은 여전한 게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도 아이 양육과 집안일 때문에 사회생활을 접은 데 대한 아쉬움이 커지기 쉽다. 스펙을 썩히기 아깝거나 외벌이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새 직장에 도전하는 재취업자들이 늘고 있다. 경단녀에서 신입사원으로 변신한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재취업은 다시 ‘미생’ 시작하는 기분

오랜 업무 공백기를 끝내고 입사한 경단녀 출신 신입사원들은 ‘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견 정보기술(IT)업체에서 웹디자이너로 5년간 일하다 5년 전 퇴직한 정모씨(40)는 최근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재취업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하루 종일 직장에 있을 수는 없어 프리랜서를 택했다. 프리랜서로 재취업한 건 사내 어린이집 같은 복지시설을 갖춘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다.

정씨는 “일거리를 달라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모두들 어엿한 중간관리자가 돼 있었다”며 “직급 관리자가 한없이 높아 보이는 ‘미생’의 삶을 40대에 새로 시작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가 아이가 더 크면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알아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직원 복지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곳에 입사한 이들은 첫 직장으로 연봉만 높은 곳을 골랐던 것이 후회된다고도 말한다. 작년 한 공공기관에 취직한 이모 사원(34)의 첫 직장은 대형 건설사였다. 그는 입사 초만 해도 대학 동기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 업무 시간이 긴 대신 연봉이 높고 해외파견 근무 기회 등도 많아서였다. 하지만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고부터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의 모습이 단점으로 변했다. “뒤늦게 복지 혜택이 좋은 곳을 찾아서 신입으로 입사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좋은 직장에 들어갈 걸 그랬어요. 저와 같은 시기에 이곳을 첫 직장으로 골라 입사한 선배들은 이미 ‘상사님’이에요.”

블라인드 채용 공략해 재취업 성공하기도

경력 단절 이후 재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은 결혼 여부, 자식 유무 등을 따지지 않는 업계를 집중 공략하거나 전문 경력을 쌓아놓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올해 한 공공기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윤모 사원(39)은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덕을 톡톡히 봤다. 출산 직후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던 윤 사원은 둘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 그에게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이 용기를 줬다. 블라인드 채용을 할 때는 이력서에 출신 지역, 혼인 여부 등을 적을 필요가 없다. 윤 사원은 2년간의 준비 끝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신이 숨겨둔’ 공공기관에 합격해 만족해하며 출근하고 있다.

이모씨(41)는 반대로 재취업한 새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다. 이씨는 어린이집 교사로 재취업한 지 3개월 만에 사표를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 공백기에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일을 해보니 힘에 부쳤다. 이씨는 “원래 하던 일은 마케팅 쪽이었는데 그만둔 지 10년가량 지났다”며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마케팅보단 전문적인 직군에서 일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회사, 가정 모두에서 ‘죄인’된 기분”

무사히 재취업에 성공해 경단녀에서 벗어난 신입사원들도 고민은 있다. “회사와 가정 모두에 잘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국내 한 IT기업에 재취업한 이 과장(36)은 요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 과장은 새 직장 동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업무에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살배기 아이 때문에 늦게 퇴근하기는 어려워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이의 유치원 등원 준비로 이마저도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 과장은 퇴근 후 집에서도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낮 동안 육아는 친정어머니의 몫이 됐고, 저녁 6시에 정시 퇴근을 해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3시간에 불과해서다.

아이를 돌봐줄 친인척이 없는 직장인들은 “한 사람이 버는 돈이 다 양육비로 나간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얼마 전 화장품 제조업체에 재취업한 한 대리(35)는 “회사에서 200만원 중반의 월급을 받는데 도우미 비용을 제하고 나면 실제 살림에 보태는 돈은 몇십만 원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양가 부모가 모두 지방에 거주하는 한 대리는 재취업하면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했다. 한 대리가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도우미 아주머니께 드리는 돈은 월 180만원가량이다. 한씨는 “이대로 일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