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에 근린외교의 중·장기 목표는 있는 건가

입력 2019-04-08 17:56
일본·중국·러시아 '단기 현안'에 급급
나라 장래 내다보는 긴 안목 고민해야


최악으로 치닫는 한국과 일본 관계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며 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을 겨냥한 세무조사, 통관지체, 수출제재 같은 일본 측 움직임이 심상찮다. 일본산 기계·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국내의 일부 산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다음달로 예정됐던 50년 역사의 한일경제인회의도 연기됐다. 정부와 정치 차원의 대립이 경제와 민간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외교적 마찰이 경제·산업 쪽으로 확산되면 양국 모두 심각한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당장은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배상판결로 촉발된 최악의 한·일 관계가 걱정이지만, 차제에 우리 외교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경제와 안보에서 중요한 이웃 나라들과의 근린외교에서 전략과 목표가 제대로 설정돼 있는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일(對日) 외교만이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장기 관점의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세 논란’이나 되풀이될 뿐, 북한핵 조기 폐기라는 안보 현안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사드 보복’ 등을 보면 단기적 협력과제도 명확지 않다. 최근의 여러 징후를 보면 러시아도 확실히 북한에 경도돼 있다. 전통적 가치 동맹이자 오랫동안 우리 외교의 핵심 축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도 영 매끄럽지 못하다. 오는 11일 워싱턴DC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 관계의 재확인을 기대하지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우리 외교 당국의 현주소다.

외교는 총만 내세우지 않을 뿐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전쟁이다. 섬세함과 큰 그림이 전략 전술에 적절히 배합돼야 한다. 주재국 말도 못 하는 인사들이나 실패한 청와대 경제참모를 대사로 보내고, 어렵게 매듭지은 과거사 협상을 ‘외교적폐’로 규정한 당사자를 총영사로 기용한 것부터가 고립외교를 자초하는 일이었다. 미·중 정상회담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라는 역사왜곡까지 나와도 이를 바로잡는 정부의 노력은 안 보이는 지경이 됐다.

4강국의 이해관계에 끼여 앞으로 한국은 힘든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만이 아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설사 순조롭게 마무리돼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팽창 정책과 이에 맞서는 미국의 ‘항행의 자유’전략은 한층 첨예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본 해군은 이런 미국을 지원하는 해상작전을 시작했다.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중국이 주도해 온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우리의 입장과 전략은 무엇인가.

개방형 강소국을 지향해 온 우리나라에 지혜롭고 유연한 외교는 필수다. 개방과 교역 확대, 자유민주주의 신장 같은 가치 공유가 우방의 제일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현 정부의 근린외교를 두고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구한말의 쇄국에 빗대는 비판까지 들린다. ‘최상의 외교’라는 정상외교로 당장 한·일 관계부터 정상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나사가 빠진 것인지, 역량의 한계인지도 알 수 없는 외교부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