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32) 신용창출과 통화승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OO%, 예금금리를 △△%로 높였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뉴스만 보면 은행은 예금·대출만 거래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은 이 외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신용창출
실생활 속에서 은행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비대면(非對面) 금융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편리한 금융거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예금과 대출이라는 은행 본연의 기본적인 업무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은행은 저축하려는 경제주체가 돈을 맡기면 일정한 수준의 이자를 약속한다. 이때 저축하는 자금이 예금이 된다. 은행은 예금의 일정 금액만 남겨둔 뒤 다시 가계·기업에 대출한다. 이때 은행이 일정한 자금을 남겨두는 것을 지난 시간에 배운 ‘지급준비금’이라고 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인 지급준비금제도는 은행의 신용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급준비율이 10%라고 가정하자. 중앙은행이 50억원의 본원통화를 은행에 공급하면 처음 은행에서는 5억원을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45억원을 대출한다. 대출된 45억원이 다시 은행에 예금된다고 보면 은행은 다시 4억5000만원을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한다. 그리고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40억5000만원을 대출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50+45+40.5+…가 되어 처음 공급된 50억원보다 더 많은 통화가 공급되는 효과를 낸다. 이 과정을 은행의 신용창출이라고 한다.
뱅크런과 신용경색
물론 은행의 신용창출 역할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1929년 대공황,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등은 은행의 역할이 붕괴돼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다. 두 사례 모두 금융 부문의 불안이 엄습해오자 가계는 예금한 돈을 인출하려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했다. 기업이 도산하고 주가가 폭락하며 붕괴돼가는 모습을 본 예금주들은 은행 예금을 현금으로 보유하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은 일정 액수를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기에 일정한 수준의 예금인출은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뱅크런 사태에서는 은행이 이를 견딜 수 없다. 은행은 문을 닫거나 대출해준 기업들의 자금을 긴급히 회수하거나 중앙은행의 긴급자금지원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자 시중에 통화 공급이 줄어들었다. 왜 그랬을까?
본원통화·통화승수와 통화량
뱅크런 사태로 은행은 예금자들의 현금인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지급준비율을 더욱 높였고, 가계는 현금 보유를 늘렸다. 그러자 ‘통화승수(money multiplier)’가 하락하면서 시중의 화폐 공급이 감소했다. 여기서 통화승수란 무엇일까? 통화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다. 즉, 통화승수는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이의 몇 배에 달하는 통화를 창출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측정이 가능하다. 통화승수는 현금통화비율과 지급준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현금통화비율과 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통화승수는 커지고 통화량은 증가한다. 중앙은행은 통화승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본원통화 공급 규모를 조절하거나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해 통화량을 간접적으로 조절한다. 본원통화, 통화승수의 개념을 통해 신용창출, 통화량의 움직임을 분석하면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
본원통화
Monetary Base. 중앙은행의 창구를 통하여 시중에 나온 현금으로 민간이 보유한 현금통화와 은행이 보유한 지급준비금으로 구성돼 있다.
뱅크런
Bank-run.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말한다. 은행이 부실해질 것을 두려워한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간다(run)는 데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