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9개월 만에 나온 첫 제품, 첫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설렘"

입력 2019-04-07 17:18
나의 창업 다이어리

오가희 < OhY Lab. 대표 >


지난해 여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아예 아이들 시각에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콧구멍에 빨대를 꽂은 바다거북을 본 아이가 마음 아파하면서 ‘나 이제 빨대 안 쓸래’라고 말하는 순간 일회용 빨대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한 명 줄어든다. 아이의 작은 결심은 나비의 날갯짓이지만 이 아이가 자라 사회에 나가면 그 결심은 태풍이 돼 돌아올 수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룬 보드게임 ‘플라스틱 플래닛’은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북과 보드게임, 증강현실(AR) 콘텐츠로 구성돼 있다. 동물을 괴롭히는 쓰레기 괴물을 찾아 나선 주인공이 쓰레기 괴물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을 스토리북으로 담았다. AR 콘텐츠와 보드게임은 쓰레기 괴물에게 고통받는 동물들을 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재미 한 그릇에 가치 한 꼬집을 담는다’는 오와이랩의 철학을 담아 만들었다.

보드게임이 유아 교육용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규칙을 단순하게 만들 순 없었다. 임시로 만든 규칙과 구성물로 유아를 모아 놀아보는 것을 반복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더하기나 빼기가 가능한 아이(보통 6세)라면 게임을 이해하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룰로 만들었다. 유아가 할 수 있다고 만만히 보면 금물이다. 게임 참가자가 물리쳐야 하는 쓰레기 괴물은 상당히 강력하다. 이 게임 규칙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동물을 끌어와 스토리텔링을 짜 넣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동물들을 괴롭힌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디어를 내고 맞춤법에 맞춰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전 직장에서 작은 인연으로 닿았던 김혜승 작가가 흔쾌히 게임 디자인을 맡아줬을 때, 김 작가를 통해 AR 제작자인 서준교 키들리 대표를 소개받았을 땐 만세를 불렀다. 인맥이 힘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멘토로 연결해 준 김기찬 만두게임즈 대표는 보드게임을 제작할 때 필요한 각종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실제 제품을 제작하는 것까지 돕고 있다.

플라스틱 플래닛은 지난주 크라우드 펀딩 업체 와디즈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조금씩 바뀌는 펀딩 참여자 수를 보며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펀딩을 백 번 보고 참가해왔지만 내 펀딩 한 번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지.

플라스틱 플래닛을 생각하고 시장에 내놓기까지 걸린 기간은 9개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날, 새 제품이 나왔으니 앞으로 꽃길만 펼쳐졌으면 좋겠다. 어떻게 제품을 알려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저 주어진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