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 확대" 산업현장 호소 내팽개친 국회

입력 2019-04-04 17:35
현장에서

여야 '짬짜미'…민주노총은 으름장

백승현 경제부 기자


[ 백승현 기자 ]
예상은 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입법을 기대했던 3월 임시국회가 빈손으로 끝났다. 지난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제 개편을 논의했으나 이렇다 할 격론 한 번 없이 회의를 마무리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재논의하자는 것만 합의했다. 입법 무산 사태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보궐선거에 정신이 팔려 두 현안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난달 7일 3월 임시국회가 문을 연 이후 여야가 최저임금·탄력근로 관련 회의를 연 것은 3일 고용노동소위 전까지는 지난달 20일 교수·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청취한 게 사실상 전부다. 결론적으로 “야당이 협조를 안 해서” “여당이 일방적이어서”라는 주장은 핑계였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여당의 선거제 개편 압박 등 공세에 맞서야 하는 한국당으로서는 급할 게 없었다. 탄력근로제에 대한 노사정 합의(단위기간 3개월→6개월로 확대)를 뛰어넘는 △탄력근로 기간 1년 △선택근로제 확대 등을 주장한 배경이다. 민주당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막바지 논의 중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 논의 결과가 국회로 넘어오면 최저임금 개편·탄력근로 확대와의 ‘빅딜’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제 개편은 경영계 요구이고,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계 민원이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한몫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두 법안이 통과되기 힘들다는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일 국회 안팎에서 격렬 집회를 벌였다. 1월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흐트러진 조직력을 추스르는 기회로 삼았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평가다. 결과적으로 이번 입법 무산은 여야는 물론 민주노총에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계도기간 종료에도 5월부터 사업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계도기간을 연장했고, 그동안 최저임금 심의기간이 매년 한 달 남짓 기간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달 말까지 두 법안을 정리해도 법·절차적으로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 정략적 계산과 정부의 느긋함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산업현장에 떠넘겨졌다. 주 52시간 근로제 본격 시행으로 불가피하게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은 현실화했고,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는 자영업자의 비명 소리는 높아졌다. 민주당의 ‘큰 그림’ 속에 한국당이 ‘주연’을, 민주노총이 ‘조연’을 맡아 무산시킨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제 개편. 4월 국회에서는 이런 ‘삼류 드라마’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argo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