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영의 개러지에서]
차(車)업계 수장들이 줄줄이 바뀌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 정기주주총회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확정했다. '정의선 체제'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쌍용자동차도 지난달 주총장에서 4년 만에 새로운 대표이사를 자리에 앉혔고, BMW 그룹 코리아는 무려 20년 만에 신임 대표에게 경영을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불 자동차'란 오명을 남긴 화재 이슈와 리콜, 2010년 이후 만성적자, 행동주의 펀드로부터의 경영간섭 등 새 대표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그대로다. 새 대표들 역시 기존의 경영진이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영체계를 다시 정립하는데 '청사진'보다 '반성'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김효준 BMW 그룹 코리아 회장(62)이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2000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지 20년 만이다. 지난해 발생했던 '화재사고'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다. BMW그룹 코리아는 김 회장 대신 한상윤 사장(52)을 새 대표이사로 앉혔다.
김 회장은 여전히 등기이사다. 앞으로도 회장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이야기다. BMW그룹은 이와 관련해 "그간 보여준 혁신적인 리더십과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회장직을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95년 BMW 그룹 코리아 설립 당시 재무담당(CFO)으로 근무한 그는 2000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해 현재까지 재직하는 동안 1만4000여명의 직·간접 고용창출과 500여개 업체와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등 한국 사회에 큰 공헌을 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년 만에 수장을 교체하면서 낸 발표문에서 'BMW 화재사고'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김 회장의 '용퇴'로 볼 수 있는 것일까.
BMW 화재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민관 합동조사단은 지난해 12월 BMW의 소명과 추가 조사·실험을 거친 뒤 추가 리콜 여부를 이른 시일 안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진행 중인 리콜이 100% 조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달 22일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이던 BMW 320i 차량에서 또 불이 났다. 닷새 전인 17일에도 BMW X5 차량에서 주행 중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 정확한 화재 원인도 조사 중이다.
한상윤 대표이사는 화재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18년부터 그는 사실상 사장 역할을 맡았고, 1년간 대표이사직 승계를 위한 준비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세일즈, 마케팅, MINI 총괄을 거친 뒤 2016년 BMW 말레이시아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한 대표 역시 '화재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쌍용차의 경우 2010년 이후 만성적자가 신임 대표에게 부담인 상황이다. 쌍용차는 지난해 한국GM을 따돌리고 15년 만에 내수 판매 순위 3위에 올랐지만, 영업손실은 전년(2017년)에 비해 10억원가량 줄어드는데 그쳤다(연결재무제표 기준).
특히 매출액은 3조7047억여원으로 전년의 3조4946억여원보다 6%가량 늘었지만, 매출원가가 2조9785억원에서 3조2425억원으로 크게 뛰어올라 매출총이익(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뺀 수치)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매출원가율이 높아졌다면 제조비용이나 구입비용이 증가했다는 것인데 '이익의 감소'로 보면 된다. 매출원가는 '판매한 제품 분량만큼의 제조원가'를 말한다. 반면 제조원가는 모든 제품(재고 포함)을 만드는데 투입된 비용이다.
쌍용차의 시장점유율이 다소 회복되는 등 겉으로 보기엔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익'이란 측면에서 바라보면 가변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쌍용차는 올해 1분기(1~3월)에 내수시장에서 2만7350대를 팔아 2003년 1분기 이후 16년 만에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고 1일 시장에 알렸다.
하지만 1분기 보고서를 통해 이익의 질을 따져봐야 할 시기다. 예병태 쌍용차 신임 대표이사는 서울모터쇼 개막을 앞두고 "적자를 줄여서 흑자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기자들에게 말했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주총장에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과 '표대결'을 벌였다. '완승'을 거뒀지만, 엘리엇의 경영간섭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한 지 1년 만에 경영에 다시 개입한 것인데 '반대표'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도 주총 이후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이번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견을 주신 주주 여러분의 목소리도 소중히 여기고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며 "앞으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권익 향상에 최선을 다해 주주 여러분은 물론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이 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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