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롯데는 왜 '위쿡'에 투자했을까

입력 2019-03-29 09:58
수정 2019-03-29 10:00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공유주방 자리 보러 오셨어요?”

요즘 강남 부동산을 기웃거리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강남역과 역삼역, 선릉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에만 20여 개의 공유주방이 있다. 공유주방은 온라인 식품 구매 시장, 배달앱(응용프로그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커졌다. “어떻게 신선식품을 눈으로 안 보고 사냐”던 사람들에게 몇년 새 장벽이 무너졌다. 높은 임대료와 비싼 초기 설비투자로 외식 자영업을 망설이던 사람들은 “주방만 빌려 음식을 만들고 배달만 잘 하면 뜬다”는 희망으로 공유주방으로 몰려가고 있다. 수천 만원대의 주방 설비가 다 있고 월 이용료만 내면 된다. 혹시 잘 안 팔리면 메뉴나 브랜드명을 바로 바꿀 수도 있는 장점도 있다.

공유주방 브랜드는 1년새 우후죽순 생겼다. 지난해 우버 창업자가 한국에 공유주방을 열겠다고 공언한 뒤엔 더 그렇다. 많은 브랜드 중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이 있다.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운영하는 ‘위쿡’이다. 위쿡은 국내 1호 공유주방이다. 이미 460여 팀이 이곳을 거쳐갔다. 2016년 이후 지금까지 150억원을 투자 받았다. 재미있는 건 위쿡에 투자한 곳들이 롯데, GS리테일 등 유통회사라는 점이다. 롯데는 특히 위쿡의 사업 초기 단계부터 투자했고, 지난 26일엔 15억원을 추가했다. 식품 제조는 물론 백화점, 편의점, 온라인몰, 대형마트, 면세점 등 모든 유통 채널을 갖고 있는 롯데는 왜 하고 많은 공유 주방 중에 위쿡에 투자했을까.

◆①부동산 임대업이 아니다

위쿡은 다른 공유주방과 다르다. 주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업체들과 달라 위쿡은 ‘F&B(식음료) 생태계’를 다룬다. △인큐베이팅△식품 유통△딜리버리 전문 키친△공유주방 등 총 4개의 사업부문 등이 있다. 외식과 식품 산업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창업자들과 나누겠다는 목표다. 3주 전 위쿡에 합류한 이산호 인큐베이팅 센터장(부대표)은 16년 전 최연소 호텔 셰프로 발탁돼 워커힐호텔의 요리를 책임지던 사람이다. 그는 “K팝이 글로벌 콘텐츠가 된 건 체계적 매니지먼트가 있었고, 위쿡은 이 업계에 톱 매니지먼트가 될 수 있는 회사”라면서 “요리에 대한 열정과 노하우를 도전적인 창업자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싶어 합류하게 됐다”고 했다.

위쿡의 창업자인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는 2016년 롯데엑셀러레이터 ‘엘캠프’를 통해 투자 받아 서울 공덕동 마포창업허브에서 시작했다. 그는 “누구나 F&B비즈니스를 시작하고 키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음식을 판매할 수 있는 외식업, 편의점, 온라인몰까지의 연결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만약 위쿡이 단순 부동산업이었다면 기존 유통사들이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다. 위쿡에는 예비 창업자, 기존 외식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이 온다. “우리 엄마 김치 레시피가 아깝다”며 찾아오는 일반인도 많다. 가게를 내거나 장사를 할 엄두는 안 났지만 위쿡에서 한번 작은 시작을 해보고 싶다는 이들이 몰려드는 것. 이 센터장과 같은 메뉴 개발팀 전문가에게 레시피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파일럿 제품을 만들어 시장 반응을 따져보기도 한다. 유통 회사 MD들은 늘 새롭고 뛰어난, 독보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목말라 있다. 위쿡에서 F&B의 슈퍼스타의 씨앗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②모두의 주방, 셰프의 주방

위쿡의 공유주방은 1시간 단위, 또는 월 단위, 연 단위 등으로 주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월요일마다 쉰다는 직장인 A씨는 월요일에만 위쿡에 들러 일주일 동안 주문 받은 쌀푸딩을 만들고, 택배로 발송한다. A씨는 “회사 일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투잡을 하고 있고, 꿈꿔오던 일을 작게나마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위쿡에 투자하며 롯데그룹의 핵심 유통 식품회사인 롯데호텔·롯데쇼핑 e커머스·롯데슈퍼·롯데지알에스 4개사가 사업제휴해 제품을 개발하는 등 다양하게 협업하기로 했다. 이 점은 창업자들에게도 중요하다. 김기웅 대표는 “아무리 멋지게 잘 만들어도 팔려야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는 “외식 경기가 안 좋고, 외식업이 저평가 되어 있는 건 기본적으로 숫자가 너무 많고, 공간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고 했다. 실력있는 푸드메이커, 잠재력 있는 푸드메이커들을 뽑고 이들에게 마케팅 전략과 유통 전략까지 원스톱으로 컨설팅 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유통사가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것은 위쿡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전국 유통망을 가진 전통 채널에 언제든지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외식업 운영자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모바일 홍보활동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20~30대 밀레니얼 세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이기 때문에 공유주방에서의 성공 확률도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동현 위쿡 홍보마케팅 담당 임원은 “공간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고,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공간도 입소문과 모바일 홍보로 줄 서는 맛집에 될 수 있는 시대”라며 “위쿡을 찾는 청년 창업자들은 기존 유통 관행에서 벗어나서도 충분히 스타 푸드 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③위쿡 직원 90%이상은 외식업 해본 자

위쿡 사직점에는 외식업 경영자, 관계 업종에 일했던 이들이 함께 한다. “얼마나 힘든 지 잘 안다”고 말한다. 김기웅 대표도 2014년 영동시장에 도시락 배달 전문점을 내본 경험이 있다. 그때 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여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공유주방은 미국에선 1980년대 등장한 개념이다. 하지만 온라인 식품 시장이 커지고, 각종 공유 경제가 주목받으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F&B에서는 그 거점이 공유주방에서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음식점과 식품제조업 비중은 73만2411개다. 인구 70명 당 1개 꼴로이고, 여전히 창업 1위 업종이 외식업이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내 5인 미만 자영업자 음식점의 매출액 증가율은 4.2%. 이 기간 비용 증가율은 8.4%로 2배 속도였다. 실제 김 대표가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3년 만에 배달 직원과 홀 직원의 하루 일당은 6만원대에서 9만원대로 올랐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하니 음식 가격은 함부로 못 올리는 구조다. 하지만 인건비, 임대료, 식재료 비용은 계속 치솟는다.

위쿡은 자체 외식 브랜드를 여러 개 만들었다. 부타이, PMTS, 아르크 등의 브랜드다. 공유주방 입주사들의 장점을 살려 시작한 브랜드로 이 브랜드를 이탈리안, 프렌치, 카페, 펍, 일식, 중식, 한식 등 약 20개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자체 프랜차이즈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브랜드당 100~200개의 지점을 전국에 만들고, 1년씩 운영계약을 해 ‘실제로 장사를 해보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위쿡 직원들의 철학이 담긴 사업 모델이다.

◆④롯데호텔 셰프 200명도 위쿡에서 제품 개발

롯데액셀러레이터는 공유주방이라는 사업모델의 우수성과 서비스 확장가능성 등을 높이 평가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롯데호텔 소속 셰프 200여명의 연구개발(R&D)센터로 위쿡을 활용하고 롯데호텔을 비롯해 롯데슈퍼, 롯데쇼핑 e커머스는 식음료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채널을 지원키로 했다. PB(자체 브랜드) 제품 개발도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등을 운영하는 롯데지알에스는 부동산 공동개발에 참여하고 직접 운영하는 식음료 시설 안에 우수한 위쿡 사업자 입점도 추진한다. 또 배달전용 제품 R&D도 함께 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이진성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는 “공유주방사업은 F&B 산업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이 더 기대되는 시장”이라며 “다년간 경험과 전문인력으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심플프로젝트컴퍼니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해 적극적으로 시너지 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⑤규제완화 이슈는 ‘현재 진행중’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지금까지 공유주방의 발목을 잡은 규제는 두 가지다. 생산 공간 하나당 하나의 사업자밖에 등록할 수 없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과 즉석판매제조가공업 허가 시설에서 만든 식품은 최종 소비자에게만 판매할 수 있다는 시행령이었다. 즉, 주방 하나에 한 사업자만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유주방의 ‘푸드메이커’는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영업할 수 없었다. ‘푸드메이커’는 위탁생산 형태로,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위쿡’을 통해서 판매해왔다. 이 경우 위쿡을 운영하는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제품 하자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세금도 더 내야 했다. 식약처는 이와 관련된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이달 초 약속했다. 사업자 허가 기준을 ‘공간’에서 ‘사람’으로 바꿨다.

하지만 모든 규제가 전부 풀린 것은 아니다. 즉석판매 허가 시설에서 개인 ‘푸드메이커’가 생산하는 제품은 개인에게만 판매할 수 있다. 즉 B2B 대량 판매는 아직 불가능하다. 위생 문제 등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찾기 어려워서다. (끝)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