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코리안 미러클' 발간
전직 경제관료들 대거 참석
[ 고경봉 기자 ]
“나와 함께 코리안 미러클 4편을 같이 묻어달라.”
암으로 투병 중이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2017년 1월 작고하기 전까지 코리안 미러클 편찬 작업에 매달렸다. 외환위기 극복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직면한 수많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 그리고 그 이면의 치열했던 고민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본인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강 전 장관을 비롯한 전직 경제 관료들이 대거 편찬에 참여해 화제가 된 코리안 미러클 시리즈가 28일 5편 발간을 끝으로 완간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위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는 이날 서울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코리안 미러클 5편의 국문단행본인 한국의 사회보험, 그 험난한 역정과 모험과 혁신의 벤처 생태계 구축: 한국 벤처기업 성장사의 발간 보고회를 열었다.
코리안 미러클은 한국 경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주역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이를 후대와 개발도상국에 공유하기 위해 2013년 발간 작업이 시작됐다. 1권은 1950~1970년대 고도성장 및 개발 정책을, 2권은 1980년대 자율·개방시대로의 정책 전환을 담았다. 3권은 중화학공업화·산림녹화·새마을운동을, 4권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당시 정책을 담당했던 경제 관료의 증언을 통해 서술했다.
이날 보고회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전 국무조정실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최정표 KDI 원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5편의 편찬위원장을 맡은 윤 이사장은 “코리안 미러클을 같이 묻어달라는 강 전 장관의 유언에서 보듯, 한국 현대사의 한축을 담당했던 전직 관료들이 혼신을 다하고 애정을 쏟았다”며 “향후 정책 결정 과정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1권부터 5권까지 집필에는 이계민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홍은주 전 MBC 논설주간이 참여했다.
맨 땅에 피운 사회보험, 벤처육성
이날 발표된 한국의 사회보험, 그 험난한 역정과 모험과 혁신의 벤처 생태계 구축: 한국 벤처기업 성장사는 각각 사회 복지와 혁신성장 분야 태동 당시 정책입안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정책 결정 과정과 배경을 담았다.
김종인 전 대표는 “1970년대 후반 나를 포함한 몇몇 학자가 사회보험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에 무슨 사회보험이냐’는 관료들의 반발을 샀다”며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교수와 관료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 무조건 안을 내놓으라고 밀어붙여 1977년 직장인 의료보험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현금살포 복지 우려도
참석자들은 사회보험과 혁신성장의 태동·발전기 실무를 담당했던 이들답게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쓴소리와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의료보험은 2001년 재정 고갈 위기를 겪고 나서 보험료를 3년간 연 20~25%씩 올려야 했다”며 “사회보험의 기초 토대는 재정안정성인데 현 정부의 보험 정책이 이를 경시하는 것 같아 의료보험 산파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는데 분담률만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이 도약하려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규제 혁신”이라며 “공유경제와 의료·바이오, 빅데이터 등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 안전망 확충은 시스템 차원에서 이뤄져야지 현금을 살포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며 “복지 정책이 젊은 층의 부담을 지나치게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